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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에서 기업가로] (34) 이철호 선우플랜트엔지니어링 대표

이른바 '좋은 기업, 잘나가는 기업'은 단순히 매출액 수준만을 놓고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높은 매출액이 곧 행복한 기업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사랑, 회사의 직원에 대한 배려도 이러한 기업 여부를 가름할 수 있는 척도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 중에는 기술개발, 실적 향상과 함께 인재경영이나 가족경영을 사훈으로 삼는 곳이 많다. 기업 구성의 가장 밑바탕인 인력, 즉 직원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기업 발전'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울 구로동에도 사람을 재산으로 여기는 기업이 있다. 1991년 8월 설립한 이후 꾸준한 발전을 거듭, 국내외 플랜트 전기 및 계측제어 상세 설계분야에서 선두기업으로 성장한 '선우플랜트엔지니어링㈜'이다.

이 회사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고급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래처에서 일을 맡길 때 회사의 명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곳에서 어떠한 인재들이 일을 하고 있는지가 더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선우플랜트엔지니어링은 일이 끊이지 않는다.

이철호 대표이사(51)는 "작지만 강한, 내실 있는 회사임을 자부하며 전 직원이 화합하고 공조하는 업무구조"라며 "인재를 만들어 쓰는 회사"라고 말했다.

■환경은 환경일 뿐, 내 길을 간다.

이 대표는 공업고등학교(유한공고) 출신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재벌 2세 출신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집안이 급격하게 기울면서 산동네로 이사를 갔고 이때부터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연탄배달, 과일장사…. 공부가 싫었던 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하기엔 세월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산업플랜트, 환경플랜트, 발전플랜트, 철강플랜트, 화학플랜트, 담수플랜트, 신·재생에너지, 태양광발전사업 등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다.

고졸이라는 환경이 오히려 플랜트 분야에 눈을 뜨게 한 것이다.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였다면 현재의 자신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집이 어려웠어도 성격이 어둡지는 않았다"면서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고교 시절 학생기자, 미술반, 방송반 프로듀서(PD) 등을 두루 섭렵했고 나중에 보니 이런 활동도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고 피력했다. ■플랜트 전문가로 사회 첫발

고교를 졸업한 1979년. 현대엔지니어링에 당당히 공채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는 대학 졸업자가 요즘과 같은 상황이어서 개인 노력에 따라 대기업 공채가 가능한 시절이었다.

이 대표는 긍정적인 성격으로 업무에 충실했다. '후회 없이 일했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성실은 곧 '승승장구'라는 결과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명문대학을 나와서 입사한 동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조차도 조직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는데 고등학교 졸업장뿐인 자신은 오죽하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다시 SK건설로 회사를 옮겼다. 자신을 뒤돌아보니 기술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사업에 필수 요건인 '인맥'이 부족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쌓아야 했다. '내 사람' '내 노하우'를 다져나가야 해서다.

■31세, 결국 일을 저지르다.

31세가 되던 해인 1991년 1000만원을 마련해 결국 일을 저질렀다. 달랑 컴퓨터 2대를 마련해 놓고 자신의 일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을 만류했던 가족들의 걱정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일이 없어 어머니 돈을 빌려 아내에게 월급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생활이 6개월여 동안 계속됐다.

이 대표는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31세는 어린이나 다름없는 나이"라며 "'왜 사업을 벌였을까'라는 후회도 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현대엔지니어링과 SK건설에 재직할 때 윗사람들이 일을 주기 시작하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일단 플랜트 분야에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순풍에 돛단 듯, 회사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인생사 새옹지마. 또다시 내리막길이 찾아왔다. 외환위기가 터져 해외 사업이 막혀버린 것이다. 살을 드러내고 뼈를 깎아 내는 고통이었지만 다른 곳으로 떠나는 직원을 붙잡을 순 없었다. 그는 "엔지니어링은 사람이 재산"이라며 "정말 내보내기 힘들었고 지옥 같았던 기억"이라고 떠올렸다.

■목표는 글로벌 기업

창업한 지 20년. 그의 회사는 현재 포스코개발, 포스코건설, 포스콘, 현대엔지니어링, 삼성엔지니어링, SK건설, 두산중공업, 두산엔진, GS건설, 대림산업, KC코트렐 등 굴지의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제 과제는 글로벌 기업. 그래서 그는 '종합엔지니어링'으로 회사를 키워나갈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부가가치는 2배 이상 늘어날 수 있어 올해 목표 매출액 60억원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경북 영주에 건설한 태영광발전소도 빼놓을 수 없는 사업이다.

이 대표는 "300여 대형플랜트를 설계하는 등 제철플랜트와 화공플랜트에 특화된 기술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1위의 용역사"라며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발굴하면 해외에서도 선우플랜트엔지니어링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jjw@fnnews.com정지우기자

■이철호 대표 약력 △51세 △유한공업고등학교 전기과 △대림대학 제어계측학과 △현대엔지니어링 △SK건설 △선우플랜트엔지니어링 설립(1991년) △영남지사 설립(19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