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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운전하고 충돌 방지하고..운송수단이 똑똑해진다

뤽베송 감독의 1997년작 제5원소,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목적지를 누르고 눕자 자동으로 차가 알아서 달린다.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로봇에서도 아우디는 자동운전의 미래를 보여줬다. 엄밀히 말하자면 영화가 미래를 보여줬다기 보단 실상은 자동차 회사들이 미래 기술을 맛보기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수천대가 동시에 달리는 북적거리는 도로와 달리 시야가 뻥 뚫린 짙푸른 망망대해로 시선을 돌려보자. 더 이상 선장과 항해사가 뱃머리를 어디로 돌려야 할지 상의하는 풍경이 사라진다. 브리지(선박 조종실) 한쪽의 종이 해도와 자, 연필, 날씨 정보를 담은 팩스 종이들도 없어진다. 모니터엔 실시간으로 연료가 가장 적게 드는 항로가 나타나고 배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아도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뱃길 따라 자동으로 목적지까지 도달한다.

이 꿈 같은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항공기에 이어 선박과 자동차에서도 자동운전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조선, 자동차업계는 정보기술(IT)과 융합해 과학의 마지막 '비밀의 방', 인간의 고유한 영역인 인지·판단 영역으로 파고드는 기술개발을 숨가쁘게 진행 중이다.

■사라지는 종이 해도. 2014년 자동충돌 회피

부산항에 입항한 대형 컨테이너선 기관사 K씨는 다음 기항지 미국 롱비치항에 가기 위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 선박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한다.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선박의 자동화는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해상 날씨 상황을 고려한 최적화된 항로 계산, 선박 충돌 방지 등 미세한 영역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영역이다. 선원들은 3∼6시간에 걸쳐 업데이트되는 날씨 정보 팩스를 뽑아 기수를 어디로 돌릴지 고민한다.

드넓은 바다에서도 선박 충돌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영해 및 배타적 경제수역 내 선박 해상사고는 지난 2008년 767척, 2009년 1921척에 달했다. 평택항에서 중국 일조항까지 카페리선을 운항했던 한 선장은 "충돌 사고의 80%는 졸음 운전 탓"이라고 말한다.

5일 현대중공업 기술연구소에선 이 같은 아날로그의 영역을 대체할 기술개발이 한창이다. 현대중공업은 오는 2014년 선박 해상 충돌 위험방지 시스템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 중이다. 현재 충돌방지기술 수준은 배 앞머리에 장착된 레이더로 인근에 위치한 선박의 위치를 알아내 경고음이 울리는 수준이다. 현대중공업이 개발할 기술은 경고음에서 한 발 나아가 선박이 충돌 위험을 감지한 후 자동으로 방향을 틀어주는 것이다.

이에 앞서 날씨나 해상 상황을 변수화해 연료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항로가 산출되고 그 항로에 따라 선박이 자동으로 운항되는 기술은 이미 개발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친환경 '그린십' 개발 차원에서 핀란드 소프트웨어업체 나파와 함께 지난달 이 기술 개발에 성공, 향후 건조될 선박에 적용할 예정이다. 자체 개발 중인 현대중공업도 2012년까지 이 같은 기술을 획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활발한 조선·정보기술(IT) 융합으로 이 분야 시장 규모도 클락슨 등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에 260억달러, 2020년에 351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의 진보로 미래 선상 풍경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선원들의 역할도 상당부분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혁명, 2020년 목표

전세계 완성차 업계는 현재 앞다퉈 자동운전 기술을 개발 중이다. 현대차를 비롯, 볼보·아우디·도요타 등은 단계적으로 자동운전과 관련된 기술을 신차에 적용하고 있다. 심지어 IT업체 구글도 자동운전 개발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선박이 주로 위성기술에 의존한다면 자동차는 레이더와 카메라를 센서로 활용한다.

현재 가장 앞선 곳으로 평가되는 곳은 유럽이다. 볼보는 지난 3월 출시한 S60에 자동운전 시 보행자를 칠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한 '보행자 충돌 방지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이는 차량간 충돌을 막는 차량인식 기능(시티 세이프티)에서 한층 진화된 기술이다. 현재는 앞차와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면 자동으로 속도를 줄이거나 높여 주행거리를 조정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러 기술을 완성차 업계가 앞다투어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 그랜저 5세대에도 이 기술이 적용됐다.

현대차 이원석 연구원은 "2020년이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자동운전(Autonomous Driving)이 기본적인 수준에선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동운전기술 개발은 이미 자동차 업계의 대세로 그 같은 세상이 가능케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 같은 자동운전 제어, 인지 기술들을 개발 중이다.

시험 테스트 단계에선 핸들을 잡지 않고도 실제 도로 자동 주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차선 변경 판단이나 복잡한 운전자 및 보행자의 인지영역 처리 등은 쉽지 않은 과제다. 운송수단 자동운전의 최고 단계인 자동차의 자동운전시대가 선박보다 늦게 열릴 것으로 보는 이유다.

■'인지' 블랙박스를 여는 도전…기대와 우려

문제는 자동화의 불완전성. 안전과 편리를 목적으로 개발한 자동화에 대한 맹신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행동과학을 연구하는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같은 자동화 기술이 사람들의 인지, 판단, 상황대처 능력을 퇴보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간의 직무능력개발 분야를 연구해 온 연세대 심리학과 손영우 교수는 "선박, 자동차에 앞서 지난 10년간 항공 자동화에 따른 비행기 조종사의 자질 및 역량 저하는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며 "자동화로 해결할 수 없는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역량이 점차 떨어진다는 비판이 치열하게 전개됐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인간의 참여를 배제한 자동화보다 인간과 기계가 상호 교감하고 반응하는 형태의 자동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

■사진설명=2004년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 아우디는 이 영화에서 자동운전 미래를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