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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문화人] 아트서커스 '레인' 연출 다니엘 핀지 파스카

“우정은 최고의 보물입니다. 친구는 우리가 가진 것중 가장 소중한 존재에요. '레인'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도 바로 이것입니다.”

‘서크 엘루아즈’의 ‘레인’ 연출가 다니엘 핀지 파스카(47). 이메일 인터뷰로 만난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스위스 출신의 파스카는 유년시절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탈리아와 인접한 휴양도시 루가노가 그의 고향이다. 집안은 대대로 사진사가 많았고 어렸을때 암실은 그의 놀이터였다. 형 마르코와 함께 동네 친구들을 불러모아 축구팀을 만들어 뛰어놀기도 했다.서커스에 눈을 돌린 건 체조를 배우면서였다. “유난히 몸을 쓰는 일에 희열을 느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나이 열아홉에 그는 베낭 하나 달랑 메고 인도로 떠난다. 환자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의 작품에 내재된 휴머니즘은 그의 인도 생활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인도에서 그는 ‘떼아뜨로 수닐’을 설립, ‘위로의 연극’이라는 그만의 연극 화풍을 탄생시켰다. 25개의 작품을 제작했고 20개국에서 무대를 가졌다. 가는 곳마다 특유의 휴머니티와 유쾌함으로 갈채를 받았다.

그의 이름을 본격 세계에 알린 건 ‘서크 엘루와즈’와의 만남 덕분일 것이다. ‘서크 엘루와즈’는 ‘태양의 서커스’와 함께 캐나다를 대표하는 아트서커스 제작사다. 1994년 국립서커스 학교와 ‘태양의 서커스’ 멤버 7인이 만들었다. 파스카는 ‘서크 엘루아즈’의 하늘 삼부작을 연출했다.‘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이라는 뜻의 ‘노마드(2002년)’,‘당신 눈속의 비처럼’을 뜻하는 ‘레인(2003년)’,그리고 ‘안개’라는 의미의 ‘네비아(2008년)’. ‘노마드’는 파리,런던,비엔나 등지에서 7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쳤다. ‘레인’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성공을 거둔 뒤 영국 씨어터 어워드에서 베스트 투어링 프러덕션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으로 파스카는 뉴욕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에서 최고 감독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파스카는 2003년 서크 엘루아즈의 요청으로 태양의 서커스 ‘코르테오’도 만들었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폐막식도 파스카가 연출했었다.

그의 대표작 ‘레인’이 국내 무대에 오른다. 오는 24일부터 7월 10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다.

빛과 조명, 퍼포먼스와 아크로바틱, 음악과 시나리오가 더해진 한편의 뮤지컬 같은 서커스다. 서커스 리허설을 하고 있는 한 극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가운데 젊은 남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렉트릭 사운드와 보사노바풍의 음악을 배경으로 아크로바틱과 아름다운 퍼포먼스가 두시간동안 무대를 채운다.

그는 ‘레인’의 영감은 어린시절 추억에서 떠오른 것이라고 말한다.“어릴때 폭풍우 속에서 놀았던 기억이 강렬해요. 당시 축제용 멋진 의상과 신발을 신은 상태였는데 그건 문제가 안됐어요. 폭풍우에 친구들과 함께 정신없이 뒹굴었어요. 그때 만끽한 자유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어요. ‘레인’은 그시절 자유에 헌정하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레인’의 압권은 피날레 부분이다. 마지막 10여분 동안 비가 사정없이 쏟아진다. 여기에 사용되는 물만 2000ℓ. 천장에서 쏟아지는 비로 무대는 온통 물바다가 된다. 11명의 배우들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물 속에서 물장구를 치고, 공놀이, 줄넘기에 미끄럼까지 탄다. 강렬한 엔딩장면으로 관객들은 저마다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그는 “추억 속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시간의 흐름에서 잘라내 영원히 보관하게 하는 사진처럼 만들고 싶었다. ‘레인’을 통해 멈춰 있는 추억의 사진들을 현실에서 생생하게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최근 국내선 ‘태양의 서커스’ 바레카이가 10만명이상의 관객동원에 성공하며 흥행을 거뒀다. ‘레인’이 이 여세를 몰아 모처럼 훈훈해진 아트서커스 열기를 이어갈수 있을까. 그는 한국 관객에 대해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까. “서울은 정확한 요리전통이 있어요. 그들이 좋아하는 향신료로 요리하고 그들 방식에 따라 먹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외국 레스토랑에서 색다른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하지요. 레인은 저녁을 먹으러 이탈리아 음식점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쓰는 향신료로 동심의 세계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jins@fnnews.com최진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