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자마자 시선을 잡아끌었던 건 그의 꽃무늬 셔츠였다. "이태원에서 샀어요. 2만원밖에 안 해. 집에 다른 종류 꽃무늬옷도 있어요. 비도 오고해서 꺼내입은 건데…. 시장 지나가다 잘 삽니다. 그게 경제적이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뭐 패셔너벌한 사람은 아니고…."
국내 연극계 대표 연출가 손진책(64). '마당놀이'로 유명한 극단 미추 대표 출신, 지금은 지난해 7월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이다. 경상북도 영주 사투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무뚝뚝한 스타일에 소탈한 성격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지난 22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국립극장이 만드는 국가브랜드 공연 '화선, 김홍도' 연출을 맡아 한창 리허설을 진행중이었다. 다음달 8일부터 1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첫선을 보일 '화선, 김홍도'는 우리식 노래와 춤, 음악, 연극이 어우러진 가무악극이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참여하고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한다. 대본은 배삼식 작가가 맡았다.
이 작품에 대해 가장 궁금한 건 왜 '김홍도'일까였다. 알고보니 김홍도는 오래 전부터 그의 화두였다. "김홍도는 한국인의 DNA가 뭔지 처음으로 보여준 화가입니다. 김홍도에 와서 조선 산천이 비로소 그림으로 옮겨졌고 삶이 묻어나는 서민들의 모습이 표현됐어요. 그 이전에 관념으로 사물을 그렸잖아요. 오래 전부터 그의 그림을 작품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2011년, 대한민국에서 김홍도가 가지는 의미는 뭘까. 그는 이 질문에 한참 뜸을 들여 대답했다. "의미를 강요하거나 그러고 싶진 않아요. 젊었을 땐 의미를 만들고 전달하는 게 목표였고, 내 모든 것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요. 그저 토종의 우리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는 김홍도에 대해 허무주의자이면서 낭만주의자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작품은 김홍도 인물 개인의 영웅담을 좇아가기보다 김홍도의 그림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김홍도의 풍속화첩을 극의 모티브로 삼아 김홍도가 바라본 풍경,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무대 메커니즘으로 표현해내는 것. "김홍도는 임금님의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한때 조선에서 최고인 화가였지만 말년엔 자식의 월사금도 못 댈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보냈어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 '추성부도'입니다. 가을의 정경이 물씬 풍기는 그림이에요. 등장인물들이 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어쩌면 인생은 잡을 수 없는 그림 같은 게 아닌가, 그런 것에 맞춰진 측면도 있어요. 하지만 인생 무상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에요. 그림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느끼기도 하잖아요. 결국 뭐든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열린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각자 마음껏 느끼고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는 "작품은 만들수록 힘들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옛날엔 겁도 없이 많이 만들었는데, 이젠 잘 만드는 게 정말 힘들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제대로 하는 게 어렵고, 두렵고, 그렇습니다."
1967년 극단 '산하' 연출부에서 일을 시작했고, 1974년 '서울 말뚝이'가 첫 연출작이다. 30년간 '마당놀이'를 지켜오면서도 정통연극으로 국내 연극계 한 획을 그은 대표 연출가. 40여년 연극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앞으로 가기도 바쁜데 뒤돌아볼 시간이 어디 있어요. 하하. 난 그냥 계속 가는 거예요. 사람들이 대표작이 뭐냐 잘 물어요. 그럴 때면 '아직 없어, 앞으로 만들 거야' 그리 말합니다."
연극에 대한 소신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는 연극을 '인간학'이라고 말한다. "연극은 사회적인 효용성이 중요해요.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는가 보여주는 게 연극이라고 봅니다. 독한 작품은 체질적으로 못해요. 내가 무뚝뚝한 면도 있지만 독하진 못해요. 거절도 못하고, 그래서 손해도 많이 보잖아요. 하하."
최근 연극계에 대해선 거침없는 쓴소리도 했다. "굵직한 작품은 없고 아이디어만 난무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삶이나 인간에 대해 천착하는 작품보다 감각적인 것에 치중된 작품이 많아요. 상을 받은 작품들을 봐도 대체 받을 만한가 그런 생각을 해요. 기준이 뭔지 모르겠고. 연극하다 교수를 하면 다시는 연극을 안 하는 사람도 많아요. 교수가 되기 위해 연극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에요. 이러니 교육이 제대로 되겠어요. 인문학의 위기하고 연극계의 위기는 맥락이 비슷해요. 우리 사회가 인문학적인 관심이 많아져야 더불어 연극도 살아나는 겁니다."
그가 초대 예술감독직을 맡고 있는 국립극단의 기세는 만만치 않다.
올리는 연극마다 흥행력과 작품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국립극단의 크레딧(신용) 회복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며 "레퍼토리 시스템을 안착시킬 수 있는 전용극장을 만드는 게 앞으로 과제"라고 했다.
국립극단을 맡은 이후 가장 힘든 건 산에 오를 시간이 없다는 것. "걷기를 좋아하는데 그걸 못하니 가장 힘들죠. 매일 산에 오르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요즘엔 그럴 형편이 못 되잖아요." 이 바쁜 연출가는 '화선, 김홍도'가 끝나면 8월엔 부인 김성녀씨의 일인극 '벽속의 요정'도 연출한다.
/jins@fnnews.com최진숙기자 /사진=박범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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