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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디자인의 新패러다임을 제시하다] 니얼 커크우드 미국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교수

"한강은 아직도 '잃어버린 보물'입니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끝낼 것이 아니라 15∼30년의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도 규모나 입지를 볼 때 대단히 흥미로운 사업이지만 특정 계층을 위한 닫힌 공간이 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주최로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63시티에서 열린 '2011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 국제포럼 강연자인 니얼 커크우드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교수로부터 우리나라의 도시 및 건축디자인과 인프라시설 수준, 국내외 부동산시장 전망 등을 들어봤다. 니얼 커크우드 교수는 국제포럼 강연에서 재생·파괴 일변도에서 탈피한 보존적 수술과 군부대 면적을 재배치해 활용하는 '생태작전' 등을 예로 들며 도시디자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큰 관심을 끌었다.

―서울의 건물이나 시설물을 도시디자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한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한 나라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 들어선 건축물을 보면 건축기술이 수준급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은 건축기술이나 특정 공간을 디자인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공유할 만한 열린 공공공간을 만드는 데는 미흡하다는 게 아쉽다. 도시디자인은 특정 건축물이나 시설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조경과 공원, 빌딩, 상가 등 도시를 구성하는 각각의 시설들이 조화를 이루고 시민이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건축은 기술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개별적으로 개성을 지니면서 서로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개념인 '홀리스틱 디자인(hollistic design)'에서는 다소 미흡하다. 디자인의 관점이라기보다 건축물을 포함한 시설들은 살아있는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조경과 공원, 빌딩, 상가 그리고 서울의 대표적 자연환경인 한강까지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다소 부족하다.

―서울의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은 서울의 모습을 특징짓는 가장 대표적인 자연요소다. 한강과 연계된 도시디자인의 느낌과 아쉬운 점은.

▲한강은 서울을 대표하는 자연환경 요소다. 굳이 다른 나라의 시설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강의 스케일은 프랑스 파리의 센강, 캐나다 토론토의 돈강 등에 비해 규모가 훨씬 커 활용가치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 서울시가 오페라하우스와 플로팅 아일랜드 등 개별적인 시설 등의 건설을 기획해 추진해 왔지만 여전히 한강이라는 전체 시스템의 관점에서는 기획이 부족하다. 영국 런던의 템스강과 파리의 센강은 다소 오염되고 부족한 측면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곳을 관광명소나 커뮤니케이션 장소 등으로 많이 찾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강을 '미개발 자원(under utillized resource)'이라고 부를 만하다. 한강은 넓고 큰데 현재까지 서울시가 진행해 온 도시디자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잃어버린 보물로 방치돼 있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임기 내에 서둘러 완성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15∼30년 정도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담아서 추진돼야 제 효과를 낼 수 있다. 강과 하천 같은 생물학적 자연요소(living natural elements)는 개별 건축물 하나를 짓는 것과 달리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려서 개발돼야 한다. 서두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서울의 랜드마크로 개발이 추진 중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에 대해 한 말씀 한다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주변 지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인프라와 함께 땅과 수변지역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 것인가, 대기오염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등이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벤치마킹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공원과 주거지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스타일을 창조해낼 수 있다. 센트럴파크는 1865년 조성됐지만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비해 그 규모는 훨씬 작다. 하지만 센트럴파크는 다각적인 방면에서 활용되고 있어 그 가치가 크다. 우선 낮에는 사람들의 이동경로로 쓰이고 밤에는 동물들의 생태공간으로 이용된다. 레크리에이션의 장이기도 하며 각종 문화, 스포츠, 미디어, 어린이와 노인들의 공간으로, 연인들의 데이트 공간으로도 인기가 높다. 도시와 자연의 균형을 잘 잡은 상징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도시계획은 특정 계층에만 열려 있다는 느낌이다. 그곳에 들어와서 살게 되는 사람들에게 계획의 초점이 맞춰질 경우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센트럴파크는 아직도 개발이 끝나지 않았다. 수백년이 지나도 계속 만들고 변형해 나갈 것이다. 나무를 심거나 또 다른 것을 심고 건설하고 재생하는 작업들이 유화 캔버스에 물감을 덧칠하듯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용산도 앞을 보고 진화의 개념으로 개발해야 한다. 10년 후에는 또 다른 사이클이 오고 그런 식으로 변해야 한다. 큰 틀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바꿀 것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세계 어느 나라나 같은 고민이겠지만 도시에서 건물이나 여타 시설물을 짓는 데 있어서 전통문화 보전이라는 문제에 항상 부딪히게 된다. 서울의 경우 오래된 도시이다 보니 도심 곳곳에 왕궁을 비롯한 문화재가 많아 고도제한 등 건축규제가 뒤따른다. 이 때문에 고층 빌딩을 건설하기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서울이 너무 고루한 도시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

▲파괴와 복원이라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새로운 개념을 더해보자. 재생(regeneration)이라는 개념이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 외에 원래 존재하는 작품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든가 이를 수정한다든가 하는 것이 바로 재생이다.

미국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이론이다. 18∼19세기 고대 건축물이 있는데 이것을 부술 것인가 아니면 재생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데 재생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시 디자인정책에 대해 조언한다면.

▲지금까지 봐온 서울시의 도시디자인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훌륭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사실상 달성한 것은 별로 없다고 본다. 서울시의 도시디자인은 마케팅을 통해 해외에 도시를 알리는 데 주력한 것 같다. 박물관이나 갤러리, 독특한 건축물 등 이런 것들은 그 당시에는 시의적절한 것이지만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디자인 면에서 서울은 더 환경친화적으로 디자인을 살리면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매우 공허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가,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가, 교통에 도움이 되는가, 탄소 절감에 도움이 되는가, 기후변화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체화해 고민해볼 수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미래 도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오염을 제로(0)로 하고, 탄소 배출을 제로로 하고, 보행자들이 편리하도록 해야 한다 등의 기본 원칙 아래 미래 도시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한국 부동산시장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수년째 침체가 지속되는 등 큰 후유증을 겪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주택임대 시장에 전세(Key deposit) 제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한 가지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상징적인 것이고 이 같은 부동산 거품(버블)에 의한 시장 변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욱 건강하기 때문에 고령화되고 그렇기 때문에 고령자(Aging seniors)를 위한 전용 주거상품 시장도 태동하고 있다. 내 가족, 내 아이를 위한 주택 커뮤니티뿐 아니고 고령자를 위한 주택 커뮤니티산업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부동산시장과 부동산상품은 그렇게 더욱 전문화·세분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주택과 병원 등 각종 서비스 커뮤니티가 집약된 공간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된다. 한국 부동산시장의 또 다른 큰 변수 중 하나는 곳곳에 있는 미군기지의 활용이다. 미군기지를 한데 모은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불가능한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통일이 된다면 자연스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 것이니 지금 당장 고민할 필요는 없다.

/cameye@fnnews.com김성환기자 /사진=서동일기자

■니얼 커크우드는

니얼 커크우드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교수는 영국 맨체스터대학교와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고려대학교와 중국 칭화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했고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에 기술환경센터(CTE) 설립을 주도했다.

1993년 고려대 심우경 교수의 소개로 처음 한국땅을 밟은 이후 각종 강연 등에 초청되면서 우리나라의 도시디자인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고려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 건축조경 등 4개 과목 강의를 펼쳤다. 지금은 '한국의 풍경들'이라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기획을 진행 중이다. 이 책에는 한국의 도시와 강 등을 자연과 어떻게 조화롭게 개발할 것인가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게 니얼 커크우드 교수의 설명이다.

◆약력 △60세 △영국 맨체스터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고려대 초빙교수 △중국 칭화대 초빙교수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 교수(현)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기술환경센터(CTE)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