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작 중 ‘흥행이 안 되는 건, 되는 것보다 더 힘들 것처럼 보인 작품’이 있었다. 그게 뭐였을까. 답은 ‘조로’다.
이유는 작품의 면면에서 찾을 수 있다. 해외선 신통찮았던 ‘지킬 앤 하이드’를 한국식으로 재창작해 국내 연출가보다 국내 관객을 더 잘 안다고 평가받은 데이비드 스완의 연출작이다. 2008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히트한 대작의 한국 초연이라는 점도 흥행 기대감을 키웠다. 19세기 미국 서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스페인으로 유학을 간 뒤 집시로 떠돌지만, 친구의 배반으로 몰락한 집안과 도시를 구하기 위해 돌아와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단순명료한 스토리도 국내 관객 코드와 맞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국내 모든 제작진이 탐낸 출연진이다. 그 핵심에 조승우가 있었던 건 물론이다.
최근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패를 좌우해온 쪽은 작품성도, 연출가도, 프로듀서도 아닌 배우라는 사실은 배우의 몸값을 보면 안다. 스타급 뮤지컬 전문 배우의 출연료는 회당 500만원 이상이다. 전작 ‘지킬 앤 하이드’에서 조승우의 회당 출연료는 1000만원이 넘었다. 그렇다면 연출가의 개런티는 얼마일까. 섭외 1순위 스타연출가여도 작품당 1500만원 수준이다. 뭔가 기형적인 구조지만 이게 국내 뮤지컬 현실이다.
지난 4일 개막한 뮤지컬 ‘조로’는 배우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하는 뮤지컬이었다. 6일 조승우가 출연한 저녁 공연을 지켜봤다. 객석은 예상대로 열광하는 부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소심한 귀공자에서 자유분방한 집시로, 다시 영웅으로 변신하는 조로가 일관되게 가진 코드는 액션과 코믹이다. 천장에 매달린 밧줄을 타고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중앙 무대로 진입한다. 라몬의 병사에게 붙잡혀 사살될 상황에선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 변화무쌍한 조로는 천연덕스럽게 개그까지 소화해냈다. 조로 조승우가 툭 내뱉는 코믹 대사와 표정이 작품을 끌고가는 중심축이었다. 무게감을 얹은 이는 집시여인 이네즈역 김선영과 박진감 넘치는 플라멩코 댄스를 선보인 앙상블 배우였다.
드라마는 기대보단 약했다. 라몬의 배반, 조로의 복수가 고정틀을 깨지 못한 채 2시간50분을 버틴다. 제작진은 감동이나 여운보다는 재미 쪽에 확실히 무게를 뒀다. 당초 노린 것도 한바탕 버라이어티 쇼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실력이 온전히 발휘된거 같진 않다. 전작 ‘스팸어랏’에서 보여줬듯,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은 한국형 웃음에 강한 사람이다. 이번 ‘조로’에선 웃음 직전에 멈춘 대목이 은근히 많았다. 뭔가 마무리를 다 짓지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향후에는 웃음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깜짝 놀랄 정도의 어드벤처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간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과했다는 인상도 줬다. 그동안 국내선 보지 못한 와이어 액션이 펼쳐졌지만 탄성이 나올 수준은 아니었다.
의외로 이 작품의 롱런 관건은 조로의 체력전이 될지도 모른다. 초반 집시 시절 검술 대결에선 생생했던 조로가 마지막 라몬과의 결투에선 너무 헉헉댔다. 녹초 일보 직전의 조로였다. 조로 대사처럼 “혼자 너무 바빠” 생긴 현실적인 문제일 것이다. 조로의 동선을 줄이든지, 불필요한 액션을 빼든지 수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집시 킹즈의 음악은 즐거웠지만 귀에 쏙 들어오는 넘버 하나가 없다는 점도 이 뮤지컬의 숙제다.
‘조로’를 개관작으로 전격 오픈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은 관객 만족도 면에선 한참 처졌다.
이미 객석 앞뒤 좁은 간격과 3층 시야장애석 때문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1700여석 대극장은 거대한 비행기 이코노미석 같은 느낌이었다. 올해 근사한 뮤지컬 전용극장 하나를 새로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관객에겐 배반감을 안긴 공연장이라는 데 한표를 던진다.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