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일본)=정대균 골프전문기자】"제가 좀 늦었지요∼."
배상문(25·우리투자증권)의 말이 끝나자마자 좌중은 폭소의 도가니가 된다. 경상도 사나이가 서울 표준말을 하는 개그 프로 버전으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일본프로골프(JGTO)투어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이 모이면 분위기는 늘 이렇다. 물론 분위기 메이커는 사교성이 좋고 유머 감각이 뛰어난 대구 출신의 배상문이 맡는다. 여기에 전남 목포 출신인 박성준(25·티웨이항공)이 가세하면 '남자들의 수다'는 극에 달한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가 뒤섞여 배꼽을 빼 놓기 때문이다.
올 시즌 JGTO투어는 20여명의 한국 선수들이 활동하면서 시즌 7승을 합작했다. 배상문이 3승, 김경태(25·신한금융그룹), 황중곤(19), 박재범(29), 이동환(24)이 각각 1승씩을 보탰다. 한마디로 일본 열도에 한국 군단 쓰나미가 밀려온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선수들 간의 '화합'을 빼놓을 수 없다. 김종덕(50)의 시니어투어 진출로 동갑내기 장익제와 함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허석호(38)는 "예전과 달리 한국 선수가 우승하면 우승자가 한 턱을 내는 등 잦은 모임을 갖고 있다"며 "식사도 식사지만 한국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시간들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고베에 가족이 있는 허석호를 제외하고 호텔이나 원룸에서 독신 생활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선수들은 '외로움'을 호소한다. 배상문은 "경기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 오면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며 "한국 선수들과의 모임은 그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특효약이 된다"고 말한다. 음식에 대한 고민도 있다. 장익제는 "일본 내에 한국 식당이 있긴 하지만 완전한 한국식이 아니어서 한국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짜장면이나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찾게 된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선수들 간의 회합은 서로의 경기 내용을 되짚어보거나 정보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천으로 3라운드가 취소되자 허석호, 장익제, 배상문, 조민규(23)가 한국 식당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는 부쩍 늘어난 김형성(31)의 아이언 비거리가 화제가 되었다.
허석호가 "아이언 거리는 늘었는데 (김)형성이는 나만 만나면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하자 "형이 구치 겐세이(말로 방해하는 행위)를 하니까 그렇지"라고 하자 좌중은 또 한번 뒤집어진다.
한편 내년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을 위한 교민 사회의 지원이 체계화될 전망이다. 허석호는 "다음주 열리는 카시오 월드챔피언십 대회 때 한국선수지원협의회 발족을 위한 교민들의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매니지먼트사가 없는 선수들이나 퀄리파잉스쿨 응시자는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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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잦은 회합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있다는 JGTO투어 소속 한국 선수들(왼쪽부터 김도훈, 황중곤, 배상문, 조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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