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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리니언시'제도 좋긴 좋은데

담합행위를 자진신고하면 과징금의 전액 또는 일부를 면제해 주는 제도를 '리니언시(Leniency)'라고 한다. 과징금 감면이란 당근을 주는 대신에 자진신고를 유도해 불공정거래행위를 효율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미국이 1978년 처음 시행했고 우리나라는 1997년 '독점규제및 공정거래법에 관한 법률'에 규정했다. 1순위 신고자는 100%, 2순위는 50%를 감면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2일 적발한 라면 4개사의 라면가격 담합에 대한 회사 입장이 극명하게 다른 것은 '리니언시'제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시장점유률 1위사가 담합에 가담할 이유가 없다". "1위 사업자인 농심을 따라서 올렸다"며 농심과 오뚜기, 한국야쿠르트는 일제히 담합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반면 똑같이 담합 혐의로 적발된 삼양식품은 군말이 없다. 담합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삼양식품은 공정위에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해 과징금(116억원) 면제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수하면 죄 값을 묻지 않는다'는 리니언시 제도를 적절히 활용한 덕분이다.

얼마 전에도 '빅3' 생명보험사가 개인보험 이율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해 2500억원 규모의 과징금 감면혜택을 받았다. '빅3'는 변액보험 담합을 자진신고해 또다시 과징금 감면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석유액화가스(LPG)담합과 관련해 자신신고한 일부 정유사와 가스사가 과징금을 감면받은 사례도 있다.

리니언시 제도는 동종업계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을 통한 불공정거래행위를 적발해 내는 유용한 수단인 것은 틀림없다. 담합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꼼짝 못할 증거확보도 용이하다. 이는 자연스럽게 시장경쟁을 유도해 소비자 보호로 귀결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리니언시 제도가 과징금 회피 수단이나 '먹튀'의 한 방편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점형태의 시장지배력이 큰 기업들은 자진신고 순위를 조정해 과징금을 '나눠먹는' 편법을 쓸 가능성마저 엿 보인다. 리니언시 제도가 도입 취지와는 달리 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번질될 우려가 있는 셈이다.

담합은 기업에게 막대한 이익을 보장한다. 그 이익은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담합을 통해 많은 이득을 남겼는데도 과징금 감면에 검찰고발까지 없던 일로 하는 것은 리니언시 제도의 큰 헛점이자 부작용이다. 최초 자진신고할 경우에는 전액 감면을 부여하더라도 2,3순위에 대한 감면혜택의 잣대는 달라져야 한다. 제출한 증거의 질을 따져 과징금 감면혜택을 차등적용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ink548@fnnews.com 김남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