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각광받던 퇴직연금시장이 최근 대어급 매물이 사라지면서 한산한 분위기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올해 퇴직연금 전환을 예정했던 한국전력, 두산 등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대어급 기업들이 가입 시기를 조율하고 있어서다.
더욱이 지난 6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 개정으로 개인형퇴직연금(IRP) 시대가 열렸지만 낮은 세제 혜택 등을 이유로 시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제는 퇴직연금시장이 과거와 같이 고금리 등 출혈경쟁을 통한 '가입자 유치' 경쟁에서 질적인 서비스 경쟁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에는 이달 중 공식적으로 시행될 예정인 퇴직연금 상품교환 허브시스템이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업권별 구조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15일부터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서로 간 상품교환에 나설 경우 상품 금리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한다. 금감원은 이를 취합해 사업자별 상품금리를 비교·관리해 공표할 예정이다.
본래 올 초부터 이 같은 상품교환 시스템이 운영됐지만 사업자 간 이해관계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이에 최근 금감원이 최근 각 사업자에게 관련 문서를 지침으로 내려보냈다.
이 같은 퇴직연금 허브시스템 구축의 목적은 역마진이 고금리 경쟁을 막기 위함이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면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금리 수준이 높은 타사의 상품을 요구할 경우 고객유치를 위해 역마진이 나는 높은 금리의 상품을 제공한 사업자들은 다른 곳에 해당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비정상적인 '제살 깎기'식 고금리가 점차 정상 금리로 회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금감원 측이 가장 먼저 요구한 행정지도안은 가입자에게 금리를 제시할 때 사업자별로 내부 리스크관리위원회를 거쳐 손익분기점인 적정금리를 공시하라는 것. 이로 인해 퇴직연금사업자가 다른 사업자들이 공시한 상품을 가입자에게 제공할 때 같은 이율로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는 퇴직연금시장을 잡기 위한 사업자 간 출혈경쟁이 자연스럽게 안정화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사업자인 A증권사가 고객에게 연 5%대의 상품을 제공하는 경우 은행권인 B사나 보험권 C사가 동일 상품을 요구하면 같은 이율로 상품을 팔 수 있다.
만약 A증권사가 퇴직연금 전환 규모가 몇 조원대의 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사상품 중 7%대의 높은 고금리를 제시하게 되면 C사가 다른 가입자에게 동일상품을 같은 금리로 제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같은 상품을 팔면 팔수록 A증권사의 손해가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다만 이 방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그동안 고금리 제시로 가입자를 유도한 중소형사들은 존폐 여부가 불투명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퇴직연금 관계자들은 "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선 가운데 이번 상품교환 허브시스템이 작동되면 그동안 고금리를 제시했던 중소형사들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업권별로 구조조정이 나타나 앞으로 컨설팅이나 서비스 등 질적인 경쟁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iduk@fnnews.com 김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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