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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죽음의 방울 흔드는 佛/브리짓 그랜빌 퀸메리 런던대 국제경제 교수

[세계 석학에 듣는다] 죽음의 방울 흔드는 佛/브리짓 그랜빌 퀸메리 런던대 국제경제 교수

무디스가 지난 11월 프랑스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한 단계 강등한 뒤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는 이미 2주 전에 기업인 루이 갈루아가 이끄는 전문가 패널의 정책 대응 권고를 받아들여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등급 강등을 예고하면서 무디스 애널리스트는 프랑스 경제에 '경쟁력 충격'이 필요하다는 갈루아 보고서에 정부가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강등 여부를 결정짓는 주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등급 강등은 무디스가 정부의 대응이 불충하다는 평가를 내렸음을 시사한다.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의 바탕이 되는 동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전체적인 맥락이 잡힌다.

정책결정 배경은 이른바 '그랑코미(GRANDS COMMIS)'라는 국립공무원대학(NCSS) 출신 프랑스 정부 엘리트들을 관통하는 문화와 편견에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제외한 전.현 프랑스 대통령들은 모두 이 학교 동문이다. 이들 폐쇄된 그룹은 번영을 이루고 공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통제정책(dirigisme)에 경도된 지배층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소외계층에 대한 국가 지원, 기업에 대한 적대감 등이 감지된다. 이 같은 반기업적 접근법에 대한 비판은 흔히 '초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국민들이 합의한 '사회모델'에 반하는 것으로 난도질을 당한다. 그렇지만 후한 사회복지와 친기업 정책.전통을 아우르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예는 이 같은 주장이 그릇된 것임을 잘 보여준다.

실패로 가고 있는 프랑스 모델과 성공적인 스칸디나비아 모델의 주된 차이점은 복지 '산출'에 있지 않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차이다. (프랑스의 공공의료를 포함해 상당수 공공복지 시스템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스칸디나비아의 사회계약은 공공 복지를 받는 대가로 시민들이 반드시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2011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56%인 프랑스의 공공지출은 스칸디나비아 수준 이상이지만 가계가 소비와 소득에 대해 내는 세금은 낮다. 부족분은 재정적자와 고용에 대한 높은 세금으로 메워진다.

쉴틈없는 정부 차입과 (고용주가 지불하는 )높은 근로소득세는 오랫동안 시민들이 아무런 대가없이 복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환상을 심어주었고, 정부는 복지와 공공 서비스 재원을 마련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기업 세금 인상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재정과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 점차 명확해졌고, 가계는 이제 그 셈을 치르게 됐다. 프랑스 시민들은 높은 세금과 복지 감축에 맞닥뜨렸다.

올랑드 정부는 갈루아 보고서에 대응해 기업의 고용관련 세금을 급격히, 그리고 영구히 내리는 대신 앞으로 2년간 200억유로 소득세액 공제를 해주기로 했다. 세액공제를 받는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 창출에 이 돈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감세를 통해 고용을 확대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감세는 어떤 유인도 될 수 없다. 게다가 복잡한 프랑스 세제로 인해 기업들은 2014~2015년까지는 공제혜택을 받을 수 없다.


프랑스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시장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확신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해주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모델은 임종 직전의 가래 끓는 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이것이 외국 채권자들의 자본 파업이 될지 아니면 국내 노동자들의 파업과 사회.정치 불안 확산으로 귀결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프랑스 지도자들이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