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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재원,지하경제 양성화로] (1) ⑤ 부동산·주류시장 좀먹는 불법거래

[복지 재원,지하경제 양성화로] (1) ⑤ 부동산·주류시장 좀먹는 불법거래

#1. 호프집을 운영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의 한 상가 1층(전용면적 247㎡)을 눈여겨보던 A씨는 보증금 2억5000만원, 월 임차료 1300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하기로 했다. 또 해당 호프집을 기존에 운영하던 임차인에게 1억5000만원에 달하는 권리금을 주기로 했다. 사업이 처음인 A씨는 중개업소 관계자로부터 "세입자끼리 거래되는 상가 권리금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2. 지난해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를 3억9000만원에 샀으나 이보다 6500만원 낮춘 3억2500만원으로 허위신고한 B씨. 취득세와 등록세를 적게 내기 위해 일명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결국 국토해양부의 정밀조사 결과 허위신고라는 사실이 드러나 1248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

부동산 분야의 지하경제 규모는 상당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상가의 권리금이나 아파트 입주권의 웃돈(프리미엄) 등이 통계에 쉽게 잡히지 않아서다. 그러나 이 같은 거래는 이미 사회에 관행화돼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새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135조원에 달하는 복지재원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뿐만 아니라 탈세를 위한 부동산 실거래가 허위신고도 매 분기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줄지 않는 부동산 지하경제와 탈세

24일 건설부동산업계와 국세청 등에 따르면 당사자 간 암암리에 거래되는 권리금이나 아파트 입주권의 프리미엄 등은 사실상 규제가 어려운 '지하경제'를 이루고 있다.

부동산컨설팅업체 유앤알컨설팅의 박상언 대표는 "권리금은 세입자 간의 거래로, 세금을 내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며 "차기 정부에서 권리금에 붙는 세금 부과 방안을 마련한다면 상당한 세수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 대표는 이어 "권리금 계약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한다면 '제2의 용산사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금을 줄이기 위한 부동산 실거래가 허위신고 역시 분기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2·4분기 부동산실거래가 허위신고 대상자 수와 과태료 규모는 936명에 36억원으로, 1·4분기 878명에 30억6000만원, 2011년 4·4분기 857명에 22억8000만원 등과 비교해 매분기 증가일로에 있다. 정부가 지난 2006년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를 도입해 당시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다운계약서 관행 등을 대폭 줄였으나 여전히 이 같은 허위계약서 작성사례는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무래도 경기 침체에 따라 세금에 민감해지다보니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자녀 등을 대상으로 부동산을 편법증여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증여세를 자진신고하지 않거나 납부하지 않을 경우 정상 신고한 데 비해 세금을 30% 이상 더 물게 되지만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자녀에 대한 편법 증여의 경우 결혼 등을 계기로 부모 재산을 한몫 떼주는 '연복지(緣福祉)'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며 "이 같은 관행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집값 상승세가 이어져야 하고 장기모기지가 발달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법은 "장기적으로 큰 틀에서 해결해야"

전문가들은 부동산 지하경제를 양지로 이끌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양성화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비등록 월세, 전세금 편법증여, 상가 권리금 등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놨다. 다만 지하경제 관련 대책을 단기간에 접근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분야 지하경제로는) 등록되지 않은 월세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며 "원칙적으로 세금을 물어야 하지만 실제 월세를 받는 상황에서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는 가옥주들의 세금부담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세금을 바로 매길 경우 전·월세 가격 인상으로 연결돼 사실상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자녀에 대한 전세금 편법 증여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박 전문위원은 "자녀가 결혼할 때 전세 보증금을 마련해주는 것이 관행상 보편화돼 있다보니 생긴 문제"라며 "과거 서울 강남에서는 과세 문제로 2억원짜리 집을 사주기보다는 8억원짜리 전세를 구해주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턴키 (설계.시공 일괄 입찰) 공사 입찰 시 지나친 입찰 로비 등도 지하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제도개선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이미 지난해 말 담합과 로비 등 비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턴키방식의 대형공사 입찰을 중단하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박상언 대표는 "사실상 사인 간의 거래인 권리금 규모가 부동산 지하경제에서 가장 클 것"이라며 "정확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새 정부에서 부과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권리금의 경우 과세 여부부터 따져봐야 하는 데다 권리금 책정 또한 정해진 틀이 없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규현 교수는 이와 관련, "권리금은 시장에 관행처럼 형성돼 있는 데다 제도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벌써 세금을 물리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논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허윤경 연구위원은 "자영업자들의 세원 확보가 어려운 것처럼 부동산 분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혜택을 줘서 제도권 안에 일단 들어오도록 한 뒤 과세 인프라를 들여오는 식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