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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의 핀치히터

이탈리아 2라운드 진출 이변이 아니다

한국에게 졌다! 이탈리아 축구가 어쩌다… 한국이 4강까지 올라갔단 말이야? 2002 월드컵을 지켜보며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런 탄식을 내뱉었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축구의 나라다. 열정적인 국민성답게 유럽 대륙에서도 스페인과 함께 축구 열기가 가장 뜨겁다. 하지만 야구는 불모지다.

이탈리아가 멕시코를 이겼다고! 미국을 이긴 멕시코가 어쩌다… 설마 이탈리아가 죽음의 D조에서 2라운드에 올랐단 말이야? 축구화를 벗고 야구 글러브를 손에 낀 이탈리아가 제 3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는 애초 멕시코나 캐나다의 안중에도 없는 팀이었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짜여졌다. 2라운드 진출은 당연하고, 내친 김에 우승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 나라들이 축구가 아닌 야구에서 이탈리아에 KO패 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탈리아 대표팀의 팻 벤디트(27)는 일생 동안 딱 한번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벤디트는 네브라스카주에서 태어난 순수 토종 미국인이다. 이탈리아어라고는 몇 마디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WBC 이탈리아 대표 선수가 됐다.

벤디트는 이탈리아 이민 4세대. 미국으로 건너 온 것은 그의 증조할아버지였다. 그에게는 이탈리아인의 파스타 향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어라곤 인사말 밖에 모르고 김치라면 질색하는 재미동포 4세를 어찌 한국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 벤디트에게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해 7월 여권을 손에 쥐어주었다. 벤디트는 "이탈리아 시민권자가 됐다는 사실만으로 무척 흥분됐다. 너무너무 바라던 일이다"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아주리 군단(이탈리아 대표팀의 애칭)'의 일원이 됐다.

벤디트는 2007년 45순위로 뉴욕 양키스에 드래프트됐다. 지난해 트리플 A 팀에서 구원투수로 활약하며 방어율 2.77을 기록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투구 스타일. 벤디트는 양손잡이 투수다. 오른 손 타자가 나오면 오른 팔로, 왼손 타자가 타석에 등장하면 왼 팔로 던진다. 스위치 피처로 이른바 '벤디트 룰'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벤디트 룰'이란 양손 투수와 양손 타자가 만났을 경우(2006년 실제로 벤디트와 스위치히터 랄프 헨리케즈가 맞붙은 적 있다. 벤디트는 헨리케즈가 좌타석에 들어서면 오른 손에, 우타석에 들어서면 왼 손으로 글러브를 바꿔 끼었다. 이러면서 시간을 오래 끌자 이후 벤디트 룰이 만들어졌다.) 투수가 먼저 어느 팔로 전질 것을 알려주게 하는 룰이다.

박근혜 정부 첫 인선의 백미로까지 불린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일로 해외동포들의 다음 세대들이 조국 대한민국과 조금이라도 멀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재미동포 2세 중에 최현(미국명 행크 콩거? LA 에인절스)이라는 선수가 있다. 올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서 홈런 2개를 기록한 유망주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의 WBC 2라운드 진출과 한국의 탈락을 가져다 준 숨은 이유로 보면 무리일까?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