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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전문기자의 핀치히터] 이시마루, 조지 부시 그리고 김정은

한 젊은이가 죽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불과 3개월여 앞둔 1945년 5월 11일. 날씨는 맑았고 바다는 고요했다. 23세의 이시마루 신이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제국주의 일본이 자랑하던 제로센 전투기였다.

그가 탄 비행기는 푸른 하늘을 날았다. 눈밑의 바다에는 미군 군함들이 즐비했다. 비행기는 군함들 중 하나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영원 속으로 사라졌다.

이시마루는 이른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였다.

입대 전 그는 프로야구 선수였다. 1941년 나고야(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해 2년 동안 37승31패, 방어율 1.45의 훌륭한 기록을 남겼다. 1군에 오른 첫해 17승을 올렸고 이듬해엔 20승을 기록했다.

야구 선수로 막 꽃을 피울 무렵 이시마루는 입대를 했다. 대동아전쟁에서 미군에게 밀리기 시작한 일본은 그들의 물자에 맞설 인간 병기가 필요했다. 그가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상관없었다. 야구 선수도 학생도 구분하지 않았다.

이시마루는 '자살 비행' 직전에 동료와 마지막 캐치볼을 했다. 그리고는 인간병기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의 생애는 '인간의 날개'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됐다. 한 젊은 인생의 비극적 최후는 엄연하지만 후세의 일본인은 '망각'이라는 구실로 과거를 부정하고 있다.

이시마루는 갔지만 종전 후 일본 프로야구는 더욱 꽃을 피웠다. 점령군 미국이 프로야구를 부추긴 점도 있었다. 어쨌든 패전의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일본인들에 야구만큼 위안을 주는 것은 없었다.

이라크전 발발 10주년을 맞았다.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대략 19만명. 4488명의 미국인(주로 군인)과 18만여명의 이라크인이 죽었다. 미국은 10년 동안 전쟁 비용으로 2조달러(약 2200조원)를 쏟아 부었다.

그러고도 전쟁은 미국의 실패로 끝났다. 미국은 전쟁의 원인인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했고, 이라크인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에서 고통받고 있다. 전쟁 명령을 내린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야구광이다. 너무 야구를 좋아한 나머지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을 사들여 스스로 구단주가 됐다.

부시는 보수주의자다. 아무리 더워도 야구는 뙤약볕 아래서 봐야 제맛이라고 주장한다. 텍사스의 홈구장이 있는 댈러스 일대는 6개월간 40도 이상의 무더위가 지속된다. 그런데도 부시 구단주는 새 야구장을 지으면서 돔 구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고집 덕분에 지금도 텍사스 팬들은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 없이 야구를 보고 있다. 텍사스에선 에어컨을 고장 내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농담이 있다. 부시의 생은 대체 얼마나 많은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북한의 미 본토 4대 핵미사일 타격 목표로 텍사스 오스틴이 지목됐다. 왜 하필 오스틴일까? 오스틴은 텍사스의 주도로 주지사를 지낸 부시의 정치적 고향이다. 또 현재 부시가 살고 있는 곳과도 그리 멀지 않다.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북한의 전쟁 위협은 어딘가 허술하다.

자신들의 전략 상황판을 외부로 노출시키는가 하면, 갈수록 협박 수위를 높이는 데도 불구하고 주변국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 와중에 북한의 관광 총책임자는 중국을 방문해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렸다. 가슴 아픈 일이다.

texan50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