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방콕발 인천행 A항공기. 승무원들은 항공기에 탑승한 학생 K씨의 말도 안되는 요구에 진땀을 흘렸다. 비행공포증이 있다고 주장한 K씨는 한 여 승무원에게 "나 무서우니까 좀 안아줘!"라고 말했고 승무원이 거절하자 "승무원이라면 내 개인적인 얘기도 들어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OO항공을 탔을 때에도 이거 때문에 불편했어. 태도도 싸가지 없고 말이야"라고 성질을 부렸다.
이어 K씨는 한술 더 떴다. "안아주지 않으려면 사진이라도 찍어. (승무원이 외면하자) 왜 A항공 승무원들은 같이 사진 찍는걸 꺼리지? (자신의 휴대폰에서 타 항공사 승무원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나 병신 취급 하는 거야? 병신 취급 하는 거 아니면 네 전화번호 가르쳐 줘. 오늘 저녁에 나 만날래?"
포스코에너지 한 임원이 기내에서 여 승무원을 폭행해 사회적 문제가 된 가운데 기내에서 폭행을 하는 등 소란을 피우거나 비정상적인 요구까지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강력한 처벌로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점거와 농성 등은 줄고 있지만 승무원이나 직원들을 위협하는 사례가 심심치않게 발생하고 있어 대책이 요구된다.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사를 이용하면서 피해를 끼치는 블랙 컨슈머들의 공통적인 행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구와 폭언 및 폭행으로 귀결된다.
지난 해 말 국적기를 이용해 귀국하던 한 승객은 "디저트로 제공된 과일을 혀로 핥아보니 상했다"며 "세균이 있으니 직접 식약청에 분석을 의뢰하겠다"고 주장했다. 승무원이 바꿔주겠다며 회수해 가자 "가져간 과일을 돌려 달라"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어 특별식을 요구한 후 정작 제공받자 "재미로 신청한 것이니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떼를 썼다. 커피 서비스를 제공하자 그는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잔에선 환경 호르몬이 나온다"며 서비스를 모두 거부하고 와인잔에 커피를 달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초 국내 항공사를 이용해 제주도에서 골프여행을 한 모 승객은 항공사 측에 연락해 운송 중 골프채가 부러졌으니 배상을 해달라는 요청을 접수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해당 승객은 골프를 치던중에 채가 부러졌고 이를 항공사에 뒤집어 씌우려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항공사 측에서 이러한 사실을 조심스레 승객에게 알리자 폭언을 시작했다.
40∼50대 남성 승객이 많은 동남아 노선 기내에서는 성희롱 사태가 잦은 형편이다. 여승무원들에게 성적인 농담을 던지거나 엉덩이나 손을 만지는 등 추행을 시도하는 승객이 종종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운항중 기내 화장실에서 몰래 흡연을 하는 승객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 승객은 화장실에서 흡연한 후 적발되자 증거를 대라며 발뺌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공항경찰대에 인계되기도 했다.
국내 한 항공사 관계자는 "기내에서 상식에 맞지 않는 도 넘은 행동을 하거나 허황된 이유로 악성 민원을 넣는 블랙 컨슈머들이 흔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항공기 이용 중에 발생하는 블랙 컨슈머의 부당한 요구는 항공 안전을 심대히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토해양부 등 유관 부처가 한 걸음 뒤에서 방관하고 있어 더 큰 문제를 만들고 있다"며 "항공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블랙 컨슈머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폭행·협박 또는 위계로 기내 직무를 방해하거나 승객의 안전을 해친 사람에게는 10년 이하의 징역 △거짓 사실 유포, 폭행, 협박 및 위계로써 공항운영을 방해한 사람에게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항공운항을 방해할 목적으로 거짓된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게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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