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소설을 덮으며, 영화가 그 장면들을 어떤 식으로 빚어냈을지 기대가 됐던 대목을 시간순으로 열거하면 대충 이렇다.
위대한 남자 개츠비의 욕망의 근원, 데이지의 등장 장면이 첫번째. 1920년대 풍요로운 미국, 이른바 '재즈 시대'를 보여주는 롱아일랜드 그 사치스러운 대저택에서 소설 속 화자 닉 캐러웨이가 무심코 던지는 말을 받아치며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개츠비의 첫 등장, 역시 궁금했다. 궁전 같은 개츠비 집 바로 옆, 예일대 출신 채권 딜러 닉의 허름한 월세 80달러짜리 단층 목조주택에서 이뤄지는 개츠비와 데이지의 재회 순간도 기대감이 컸다.
소설 속 가장 극적인 장면에 속하는, 개츠비의 정체를 둘러싸고 플라자호텔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혈투, 사고 후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하는 데이지 부부의 실상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데이지 걱정으로 그들의 집 뒤뜰에서 밤을 새우는 개츠비의 그 허망한 자태는 대체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 한 남자의 욕망의 산유물, 개츠비의 신기루같은 성과 1920년대 뉴욕의 풍경 역시.
영화는 화자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가 요양원에서 개츠비(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설정을 제외하면 원작을 충실히 따라간다. 원작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속 묘사를 강력한 지시문으로 삼은 듯, 영화 속 표정들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가령, "프랑스식 창에 걸린 커튼들이 설탕 입힌 웨딩케이크 같은 천장 사이를 소용돌이치며 올라갔다 내려온 뒤 다시 포도주빛 양탄자 위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며 그림자를 드리우는" 데이지(캐리 멀리건) 집의 거실 풍경 등이 그렇다.
이런 낯설지 않은 풍경들은 감동과 아쉬움을 동시에 선사했다. 하늘거리는 하얀 커튼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데이지의 첫인상은 소설에 비친 이미지와 비교하면 기대에 못 미친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부산한 상봉 장면은 애틋하긴 했지만, 작위적인 인상을 풍긴다. "개츠비, 대체 당신 누구냐" 이 주제를 놓고 플라자호텔에서 펼쳐진 한낮의 대토론도 찜찜했다.
하지만 미천한 신분으로 상류층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뒤 그 여인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쳐 결국 돈과 지위를 얻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의 실수로 어처구니없는 파국을 맞는 비극적 풍운아 개츠비, 그의 내면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성과다. 목표를 향해 질주해온 한 남자의 강인한 정신력, 하지만 헛된 욕망이 낳은 깊은 슬픔을 마주하며 한동안 '개츠비 앓이'를 하게 될 이들이 제법 될 것 같다. 제이 개츠비, 이 이름이 주는 아련함과 부질없음과 아름다운 낭만의 이미지를 스타일리스트 바즈 루어만 감독은 비교적 성실히 구현해냈다. 올해 칸 영화제 개막작.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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