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박지애 기자】 "3월부터는 중고차 수출 성수기입니다.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바이어가 많이 찾아와야 하는데…. 올해는 '엔저 영향'에다 '북한 위협'까지 겹쳐 파리만 날리고 있어요."
5월 29일 인천광역시 서구 석남동 한진 제2보세창고에 위치한 중고차수출단지협의회. 하루종일 내린 비 탓인지 이날 이곳엔 바이어들의 발길이 뜸했다. 2시간 동안 몽골인 1명이 찾아왔을 뿐이었다.
이날 한진 제2보세창고 사무실에서 만난 이남희 중고차수출단지협의회 국장은 "우리 중고차가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그나마 지난 4월부터 조금씩 엔저 영향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지난 4월 10일에 북한이 전쟁 위협을 경고하면서 해외바이어들의 발길이 더 뜸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지난 1992년 3177대였던 중고차 수출 현황은 지난해 31만1523대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올 들어 그 기세가 확연히 꺾였다.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중고차 수출 대수는 총 8만3023대. 이는 전년 동기 16만8018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의 중고차 수출량은 35만8854대로 우리나라 8만3023대보다 4배 이상 높다.
중고차 수출의 주요 고객은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이다. 보통 바이어들은 3월부터 찾아와 물건을 가져가지만 올해는 영 딴판이다. 올 들어 중고차 수출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리비아, 요르단, 몽골 순. 10위권 안에 가나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과 필리핀·베트남, 그리고 칠레 등 동남아시아 지역이 속해있다.
현재 엔화는 전년에 비해 25% 절하됐고 원화는 거꾸로 7~8% 절상된 상태다. 한국 중고차가 일본 중고차와의 세계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이 국장은 "사실 전 세계 중고차 수출 시장에서 우리나라 차는 일본 차보다 경쟁력이 있었다. 전 세계 국가 중 80%가 '좌' 핸들 국가인데, 우리나라가 이에 속하고 일본은 '우' 핸들 국가여서 경쟁력에서 우리에게 게임이 안됐다"고 설명했다.
3월이 지나 4월 들어서면서 상황이 호전되나 싶었지만 북한과의 관계 악화로 중고차 수출시장은 다시 얼어붙어 버렸다. 이 국장은 "답답한 마음에 해외바이어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 보지만 돌아오는 말은 '지금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무서워서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느냐'는 말 뿐"이라고 했다. 그는 "외부에서 느끼는 위험수위는 내부에서 느끼는 것보다 커 국내 수출업자들은 참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어젠 러시아 바이어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사할린에 강도 8.2의 지진이 났다는 속보가 떴더라"며 "이 바이어가 사할린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어 난리를 피웠는데 정작 사할린 현지에선 해저 400㎞에서 난 지진이라 지진이 난지도 모르고 있더라"고 했다. 북한 위협에 대해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중고차 수출 위축으로 중고차 가격도 하락세다.
이 국장은 "하루가 다르게 국내 중고차 시장 가격도 조금씩 하락하고 있다"며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하지만 이 국장은 중고차 수출 사업에서 물러설 순 없다고 했다. 그는 "언제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에 버티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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