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수직증축이냐 말이다. 부동산경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난데없는 괴짜 법안이 부동산 일번가를 어슬렁거리는 게 영 마뜩잖아서다. 문제아는 재작년 아파트 입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소지가 큰 것으로 판명나 족쇄를 채웠던 법안, '리모델링 수직증축 주택법 개정안' 그것이다. 15년 이상 묵은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최대 3개 층까지 더 짓게 한다는 게 골자다. 지금 그 괴짜가 족쇄를 풀고 부동산 시장을 휘젓고 누비려 한다. 그래서다. '사람'이 중심인 창조경제 시대에 사람 사는 집의 개념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경제적 계산을 앉히려는 의도에 물음표를 달고 싶음이랴.
그 이름도 쭉쭉빵빵한 수직증축. 퍼뜩 떠오르는 건 옥상에 철골을 덧대 올린 집!
더께가 내려앉은 철골 기둥이 쑥쑥 자라는 신통력을 부리면 모를까. 요모조모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락없는 '옥탑아파트'다. 국회에서 연식이 서로 다른 철골을 랑데부하는 이 법안을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불허 입장이 완고했던 정부 아닌가. 그런데 올해 돌연 허용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2년 만에 벌어진 표변. 정부의 오락가락에 국민은 헷갈리고 불안하다. 그새 세상이 깜짝 놀랄 첨단 신공법이 개발된 것도 아니다. 전담반이 통째 증발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달라진 건 대통령이 바뀌었고,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 간판이 국토교통부로 대체됐을 뿐이다.
미심쩍었는지 이번엔 국회가 만지작거리다 결재를 미뤘고, 정부는 여전히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왜? 정부는 왜 옥탑 프레임 속에 사람들을 우겨넣지 못해 안달인가? 부동산 시장을 들여다보면 절박하긴 하다. 간신히 바닥을 짚고 일어서긴 했으나, 건설 업계가 숨을 할딱거리며 아우성이다. 기대를 모았던 재건축이 지지부진한데다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반토막 나게 생겼으니 앞이 캄캄했으리라. 이도저도 안 되니 리모델링 카드, '꿩 대신 닭'을 내민 사정이다. 리모델링 규제를 화끈하게 풀어서라도 포클레인과 덤프트럭들이 굴러다니는 굉음을 듣고 싶은 거다.
얼마나 화급했으면 리모델링 최소 시한을 15년으로 잡았을까. 건축물 15년이면 청춘이다. 정부는 한창 때인 이 청춘 아파트의 척추를 손보겠다고 메스를 들었다. 집도 생명체다. 사람 사는 곳이니 사람을 닮았다. 수명도 사람과 비슷하다. 100년 시대를 맞고 있다. 내벽이 단단히 굳는 데만 20년은 족히 걸린다. 국토부에 따르면 건축령이 15년이 넘은 아파트는 전국에 걸쳐 400만가구. 이 중 수직증축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아파트는 단 한 채도 없다.
수직증축의 관건은 하중을 버텨낼 체력. 개정안은 벽체를 보강하면 3개 층까지 증축이 가능할 것으로 장담했다. 그러면서 '구조안전성 확보가 충분하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다. 그런데 이 '충분'의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하루아침에 불허에서 허용으로 돌아서게 한 그 충분 가이드라인 말이다. 전문가 31명이 이 법안에 매달렸다는데, 필시 사업성과 안전의 경계선을 오가며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했음이랴. 결국 사업성 극대화로 기울어진 이 법안엔 연식과 구조가 각기 다른 체질별 안전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망이 결여된 괴짜 법안이다.
정작 문제는 아파트다. 기초 체력이 부실하다. 1990년대 초반에 지은 것들이 더 그렇다. 한창 자재파동이 있을 때다. 다국적의 불량 철근, 중국산 불량 시멘트, 고염분의 바다모래를 쏟아부은 아파트가 부지기수라는 보고서가 벌써 나도는 마당이다. 당시 경기 분당·일산과 같은 1기 신도시에서 200만가구를 동시다발로 찍어냈으니 그럴만도 하다. 내·외벽을 뜯고 붙이다 보면 몸살을 앓기 십상이다. 손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경우 보강공사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건 불문가지다.
리모델링 그 이후는 더 무섭다. 안위가 걸린 문제엔 '만에 하나'가 늘 기폭제가 됐다는 건 역사에도 나온다. 뚜렷한 하자 하나만 발생해도 혼란은 걷잡을 수 없다. '보상하라'는 플래카드가 방방곡곡에 나부낄 상황을 상상해보라. 집값이 폭락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경영이 부실한 건설업체는 존폐의 기로에 선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차원이 아니다. 꺼림칙할 땐 접는 게 최선이다. 수직증축은 후대가 박수를 쳐줄 치적이 아니다.
joosik@fnnews.com 김주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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