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일본식 주점 전경. 서교동 세계일주의 시작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이국적 가게들 덕에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은 본래 홍대 주변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변두리로 밀려나며 형성된 상권이었다. 하지만 독특한 개성을 살린 상점이 점차 늘어나면서 젊은층의 마음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일 토요일 저녁 기자가 찾은 서교동은 여름 밤이 내뿜는 청량한 에너지로 들썩이고 있었다. 젊은 직장인으로 보이는 연인들과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 2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합정역 5번 출구 뒷편의 골목을 따라 홍대 방향으로 불과 300여미터 남짓한 거리에 커피숍과 주점, 음식점 30여 곳이 일종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국적' 분위기를 내세워 외국 도시의 이미지를 차용한 상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도쿄에서 저녁 먹고 뉴욕에서 맥주 한잔
각각 도쿄와 교토를 떠올리게 하는 두 가게가 마주보는 장면이 '서교동 세계일주'의 시작이다. 일본 전통 목조 건물을 흉내낸 두 가게는 나란히 3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교토 스타일의 주점은 나무로 만든 수저와 식기로 일본 전통 식사를 재현했다. 2층 테라스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니 바로 앞에 있는 또다른 일본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을 지나는 일본인 관광객 무리까지 보고 나니 여기가 서울인지 도쿄인지 헷갈릴 정도다.
가게를 찾은 이미라씨(여·29)는 "일본식 주점에 많이 가 봤지만 이렇게 건물 전체가 일본식으로 꾸며진 곳은 처음"이라며 "대전에서 주말을 맞아 놀러온 것인데 서울이 아니라 외국에 온 것 같은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오늘 밤 서교동에서 뉴요커로 거듭나 보자.
일본을 지나 50여 미터 거리를 거닐다 보면 또 시선을 잡는 가게를 만날 수 있다. 뉴욕이라는 이름이 없어도 화려한 그래피티로 치장된 커다란 입간판이 맨하탄의 펍을 연상케 한다. 다이어트는 포기하라는 플러스 사이즈 수제버거와 미국 인디카 맥주가 대표 메뉴다. 카운터 앞에 놓인 소파는 뉴욕의 아파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신나는 팝 음악이 흥을 돋운다.
이전에는 주로 홍대쪽 가게를 찾았다는 이남형씨(여·31)는 "몇년 전 뉴욕으로 떠났던 여행이 생각나는 가게"이라며 "요즘은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분위기에 따라 식당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게 안 작은 아이템까지 신경 쓴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환영의 꽃으로 장식된 입구와 한글을 찾아볼 수 없는 메뉴판이 이국적 정취를 더하는 하와이언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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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라 하와이, 지하철 타고
뉴욕을 경유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하와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주택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곳에 위치한 이 하와이풍 음식점은 주문을 받는 카운터에 조차 한글이 단 한 글자도 없다. 메뉴도 물론 하와이언 전통 음식이 준비돼 있고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로 태평양의 섬에 휴가를 온 듯한 기분을 한껏 배가시킨다.
우연히 길을 찾다가 형형색색의 가게 외관에 이끌렸다는 장홍철씨(남·29)는 "옥상 테라스의 파라솔과 열대 식물까지 있어서 도심 속의 휴양지 같다"며 "다른 곳와 차별되는 이국적인 느낌에 합리적인 가격도 좋기 때문에 꼭 다시 찾을 것 "이라 말했다.
메뉴와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하와이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하와이 전통 악기인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아마추어그룹 '우쿨렐레 히어로즈'의 공연이 다음달 11일부터 9월 1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진행된다.
서교동을 찾는 사람들은 가로수길에 비해 여유 있는 주차공간, 이태원 보다 조용한 분위기를 주요 장점으로 꼽는다. 이태원, 가로수길 등도 비슷한 가게들이 있지만 건물 전체를 외국처럼 꾸민 곳은 흔치 않다. 이번 주말 서교동으로 여권이 필요 없는 해외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wonder@fnnews.com 정상희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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