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일 오전 서울상공회의소 신임 회장을 선출하는 총회장.
"총회를 마치고 회사에 되돌아가면 참석한 최고경영자(CEO) 여러분은 오늘 절전 활동에 역량을 집중해 주세요." 서울상의 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임시총회에 앞서 사회자가 이날 참석한 90여명의 서울상의 의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최대 전력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절전'은 산업계 대표 수장인 서울상의 회장 선출만큼이나 중요했던 셈이다.
#2 이날 오후 삼성전자 경기 기흥사업장. 다소 어두운 가운데 작업장 내부는 후텁지근했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에 대비해 일부 구역만 조명을 켜고 냉동기 가동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어서다. 온.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낮에도 냉동기를 작동했지만 지금은 냉동기 가동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명도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는 지역을 제외하곤 최대한 소등하고 있다.
#3 르노삼성 부산공장 도장공정에서 일하는 김모 팀장. 오후 2시 절전 당부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지나 5일 이후 벌써 일곱 번째다. 내용은 '전력피크 발생. 냉방기를 10분간 전원 OFF 협조 바랍니다.' 김 팀장은 팀원들에게 전력상황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팀원들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부재자 자리의 전등은 끄고 비어있는 사무실 냉방기 가동도 중단했다.
한국 산업계가 '전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산업현장 근로자는 물론이고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부채를 들고 흐르는 땀과 싸우고 있다. 자체 전력생산시설을 보유한 업체들은 발전시설을 풀가동 중이다.
■냉방기는 '사치'
"지금부터 15분간 냉방기기 가동을 중단합니다." 12일 오후 3시, 울산 현대중공업 작업장 내에 방송이 울려퍼지자 수건을 덮어쓰고 이마에서 땀을 훔치던 직원들 입에서 "어허~ 큰일났군"하는 탄식소리가 터져나왔다. 전기사용량이 급증하자 회사 측에서 전력피크제어 체제를 가동한 것. 이 회사는 전력사용량이 가장 많은 시간대(오전 10~11시, 오후 2~3시)에 냉방기기 가동을 조절하고 생산시설 전력사용을 줄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지엠은 피크시간(오전 10~11시, 오후 2~5시)에 화장실과 탈의실 등의 에어컨 가동을 중단한다. LG화학은 전력사용 피크시간대(오전 10~11시, 오후 2~5시)엔 냉동기와 압축기 등 대표적인 고전력소모 설비 가동을 최대한 중단하고 있다.
■정비보수 시기 앞당겨
철강업체 등은 정비보수 시기를 이달로 앞당기고 있다. 연말에 진행하던 정비보수 시기를 이달로 앞당겨 전력사용량을 줄이겠다는 전략에서다.
포스코는 9월 말 예정됐던 선재공장 수리와 10월 예정됐던 후판공장 수리, 11월 예정됐던 전기강판공장 수리를 이달 진행해 조업시간을 줄임으로써 전력사용량을 감축하고 있다. 또 광양제철소에서는 4.4분기 예정됐던 열연공장 및 냉연공장 대수리 일정을 이달로 앞당겼다.
동국제강은 현재 인천공장 1개 전기로를 개·보수하고 있다. 당초 연말 진행하려 했지만 전력사용량을 최소화한다는 판단에 따라 이달 개·보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현재 전기로 2기의 대보수를 실시 중이며 정부의 절전 시책에 맞춰 오후 1~6시 사이에 전기로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전력 사용량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은 전력수요가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난 5일부터 약 3주 동안 전남 여수공장 내 전기분해로 공정의 정기보수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전기분해로 공정은 LG화학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공정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정비기간 전체 전력사용량의 10% 이상을 아끼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양광 등 발전설비 '풀가동'
기업들은 부족한 전력사정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지붕의 태양광 등 보유 중인 자가발전설비는 물론이고 태양광발전설비도 풀가동 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 사옥은 물론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등 전 사업장에서 자체 발전기를 풀가동하고 있다. 박삼구 회장이 "일상적인 절전운동은 물론이고 기업 차원에서 블랙아웃 대비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회사 측은 이달 2주차 5일 동안 약 20만㎾의 전력사용량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단일 공장부지로는 세계 최대규모이자 국내 최초인 20㎿ 규모의 태양광발전소인 '부산 신호 태양광발전소'를 이날 풀가동했다. '부산 신호 태양광발전소'의 연간 발전량은 2만5000㎿h에 달한다. 특히 이날 태양광발전소를 통해 부산공장 인근 8300가구 규모의 명지신도시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했다.
전남 여수 NCC공장은 공장 내 설치된 25㎿급 자가발전기 3기와 충북 오창공장에 설치된 3㎿급 태양광발전설비도 최대로 가동, 자체 전력 공급 비중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무실 옷차림은 휴양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절전에 나서면서 직원들의 복장도 간편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 경기 이천공장, 충북 청주공장 직원들은 이번 여름을 반바지 차림으로 나는 중이다. 입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어색하지만 워낙 더운 날씨 탓에 많은 직원들이 빨리 적응한 분위기다.
지난 5일부터 전력사용 피크시간을 집중 관리하고 있는 한화케미칼 임직원들도 실내온도 27도에 맞춰진 사무실에서 여름철 간편한 복장으로 근무에 나서고 있다.
동부대우전자 광주공장은 무더위 때문에 자칫 가중될 수 있는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후의 일정 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정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에너지 절감형 냉풍조끼' '압축공기 절감 타이머' 등 현장에서 필요한 다양한 고효율 에너지 제품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경제단체, 절전 참여 유도
경제단체도 회원사를 대상으로 긴급 절전 참여를 요청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2일 전력대란 우려가 커짐에 따라 전국 71개 지방상의와 14만 회원사에 공문을 보내 긴급 절전 참여를 요청했다. 대한상의는 "산업계가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의 절전규제에 적극 동참하는 한편 전력피크시간대 예비전력 확충을 위해 조업조정 및 자가발전기를 가동해 줄 것"을 당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회원사들에 "기업들에 피크타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최대한 냉방기 가동을 자제해달라"면서 절전 참여를 유도했다.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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