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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칼럼] 숙주 논쟁 유감

[김성호 칼럼] 숙주 논쟁 유감

잘 웃는 사람은 모질지 못하다. 다는 아니더라도 대개 그렇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잘 웃는 사람이다. TV 뉴스 화면에 나오는 걸 보면 수시로 웃는다. 지금이 웃을 때인가, 그런 경우에 웃음이 나오나 의아할 정도로 항상 웃는 낯이다. 그래선지 당내 안팎으로 그가 모질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되는데 별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그가 지난 9일 아주 모진 발언을 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야당인 민주당을 모질게 조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 훼손세력과 무분별하게 연대해 자유민주주의에 기생한 종북세력의 숙주(宿主) 노릇을 하지 않았는지, 또 지금도 비호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그의 발언은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작년 4·11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덕분이라는 점을 공격한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이런 견해에 강력 반발하지만 보통 유권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로부터 정치권에선 '숙주논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험한 말로 가열차게 벌어지더니 지금은 신경전에 머무르고 있다. 장차 이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석기 사건의 수사 확대와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아직 가늠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숙주라는 말이 충격적인 것은 그 단어가 주는 거부감 때문이다. 모질지 못한 여당 대표가 모진 말을 해서 충격적이란 해석은 부차적이다. 숙주라는 말은 중학교 생물시간에 다 배웠다. 기생(寄生)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면 숙주가 된다. 기생생물로 쉽게 연상되는 게 기생충이다. 그러니 숙주라는 단어에서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게 '불결'이다.

공상과학영화(SF)가 발달하면서 사람의 몸은 외계생물 또는 외계인(에일리언·alien)의 숙주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럴 때는 기괴한 느낌을 받는다. 호러 무비에서는 사람 몸 안에 악마가 기생하고, 퇴마사는 이것을 밖으로 끄집어내 제거한다. 엑소시즘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많이 본다. 이럴 때 느끼는 공포감은 '전율'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결국 숙주라는 말은 불결·기괴·공포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숙주정당인가 힐문하면 민주당은 불결하고 기괴하고 공포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기려는 숨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숙주와 기생물이 공생·공사관계에 있는 게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다. 기생물이 죽는다고 우리까지 죽는 건 아니다. 그 반대다. 기생물이 제거되면 숙주는 더욱 건강해진다. 기생충을 퇴치하면 아동의 건강이 좋아지고 악마를 축출하면 사람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모름지기 숙주는 기생물을 제거해야 한다.

사상 초유의 현직 의원 내란음모사건을 계기로 이 땅의 종북세력이 척결되기를 기대하는 게 대다수 민심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종북세력과 결별하고 순수한 진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절실하다. 진보의 속은 자유와 평등이고 겉은 변화와 개혁이다. 보수는 지키려 하지만 진보는 나아가려 한다. 진보주의는 사회의 청량제다. 이런 성격의 진보가 3대 세습 독재와 세계 최대 인권 탄압집단에 호의적이라면 말이 되는가.

민주당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민주당 대변인은 여당의 숙주 공세를 비판하면서 "건강한 민주.진보세력에 대한 터무니없는 종북몰이 정치공세를 지속하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자신들을 '건강한 민주·진보세력'이라고 자부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건강한 진보세력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려면 먼저 할 일이 있다. 종북과의 단연한 결별이다.
이것이 숙주논쟁에서 이기는 길이다. 종북과 연계되면 결코 건강한 민주·진보세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 민주당 당론이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면서 "우리 자식들에게 비수를 꽂겠다는 세력을 용서할 수 없다"라고 호통친 것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김성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