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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전문기자의 핀치히터] 용병이 무너뜨린 일본의 자존심

마쓰이 히데키(전 뉴욕 양키스)는 1993년 요미우리에 입단하면서 직접 등번호를 골랐다. 백넘버 '55'.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위대한 오 사다하루(왕정치)의 기록에 도전해보겠다는 각오였다.

왕정치는 1964년 시즌 55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이 기록은 2013년 9월 15일 블라디미르 발렌틴(야쿠르트)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49년간 신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마쓰이는 왜 백넘버 56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기왕이면 "신기록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쪽이 20세 청년에게 어울리는 활달한 화법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런 말을 했더라면 마쓰이는 불경죄(?)에 걸렸을 게 분명하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은 56에 있지만 입으로는 55를 말해야 하는 것이 일본 프로야구의 정서다.

그까짓 홈런 신기록이 무어 그리 대단하냐고? 일본인들에게 왕정치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알면 달라진다. 왕정치와 그의 단짝 나가시마 시게오는 일본인들에게 살아 있는 신화다. 특히 이른바 단카이 세대(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낸 베이비붐 세대)에게 ON(왕정치와 나가시마의 이니셜 합성)의 위상은 가히 종교적 수준이다.

ON의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9년 연속 일본시리즈를 제패했다.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맞물린다. 경제동물 소리를 들어가며 일에 열중했던 그들은 요미우리의 우승에 열광했다. 나가시마의 화려한 플레이와 왕정치의 홈런은 국민의 절반 이상을 요미우리 팬으로 만들었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나 히라이와 가이시 전 게이단렌(經團連) 회장 등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공공연히 요미우리 팬임을 자처했다. 웃기는 것은 야쿠르트의 구단주조차 "실은 요미우리 팬이다"고 커밍아웃(?)을 할 정도였다.

왕정치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여러 차례 위협을 받았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용병에 의해서다. 2001년 피트 로즈(당시 긴테쓰), 2002년 알렉스 카브레라(당시 세이부)에 의해 타이기록까지 갔으나 끝내 신기록 달성은 실패했다.

이유는 집중 견제 때문이었다. 1985년 3경기를 남겨 놓고 54개의 홈런을 때려낸 랜디 바스(당시 한신)는 연속 볼넷을 얻은 후 요미우리 포수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어쩌라고(So What?).

일본 프로야구의 유명한 독설가 노무라 가쓰야 전 라쿠텐 감독은 발렌틴이 지난 1일 52호 홈런을 터트리자 엉뚱한 참견을 했다. 노무라는 "메이저리그서 용도 폐기된 용병에 의해 홈런 신기록이 깨어지는 것은 수치다"며 견제를 부추겼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에게서 자주 들어 본 화법이다. 재일동포 장훈은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라"고 말해 노무라의 발언과 대조를 이뤘다.


발렌틴은 15일 한신전서 56호, 57호 홈런을 거푸 쏘아 올렸다. 49년 만에 왕정치의 홈런 신기록이 경신됐다. 그렇다고 일본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누가 깨트리면 어떤가. 기록은 어차피 깨어지라고 있는 것인데.

texan50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