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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국제사법재판소로?

[여의나루]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국제사법재판소로?

일본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최근 경제나 안보, 환경 등 여러 면에서 불안과 위축감을 느끼고 있는 일본의 승리에 축하의 박수를 보내면서 아울러 화합과 평화의 올림픽정신을 살려 이웃나라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해 주기를 기원한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자의 상처는 깊게 파인 채로 대를 이어갈 것인지. 지난해 우리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 승인을 거부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조선인 강제동원이 일본 정부의 국가총동원법이라는 틀 속에서 국민징용령에 따라 이뤄진 것이므로 적법하다고 봤다. 한국 측의 큰 오해는 조선인이 1945년까지는 일본인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적 강점에 지나지 않고 최고재판소의 판단은 일제강점기의 강제 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한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충돌한다고 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는지에 대해서도 양국 최고법원 사이에 견해가 엇갈린다. 국가 간 약속이라 할 수 있는 조약은 국회 비준을 거치면 국내 법률과 같은 효력이 있으니 우리도 협정에 기속돼야 한다는 것이 일본쪽 논리다. 그렇지만 국가가 조약을 통해 국가와는 전혀 별개의 인격을 가진 개개인의 다른 나라 기업에 대한 사적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가. 사법원리의 본질에 비춰 이런 근본적 의문이 떠오른다.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까지도 협정을 통한 청구권 포기 대상에 포함되는 것일까. 더욱이 불법행위의 성격이나 강도, 피해자의 규모나 피해액 등에 대한 파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청구권까지 완전히 소멸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안부, 징용자의 강제적 동원이나 반인도적·반인륜적 관리의 점에 대해서도 양국 간 견해차가 크다. 일본 측은 종전 70년을 앞둔 시점에 우리더러 그 증거를 대라고 한다. 어쩌면 일본 정부 측에는 현재 국가적인 개입이나 지시 등에 관한 물적·객관적 증거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일본 측에서 이에 관한 공식적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물로 발표된 것이 바로 1993년 고노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다. 이런 일본의 총체적 공식적 평가는 구체적 조사와 이에 관한 자료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는 말은 20년 지나서 이제 그러한 시인과 사과를 철회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최근 징용자들의 저금통장 수만개를 일본은행이 보관 중인 사실이 확인됐는데 일본이 이 통장의 주인과 저금액수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징용자더러 스스로 알아서 증거를 대 예금을 찾아가라고 한다면 누가 이렇게 진행되는 예금반환 절차를 공정하다고 하겠는가.

일본 정부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배상을 명하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협정에 따르면 한.일 양국 간 분쟁이 생길 경우 중재위원회를 발족시키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앞서 분쟁중재위원회 구성 등을 먼저 제안하는 게 순서다.
일본 기업이 판결에 따른 배상의 뜻을 밝히자 일본 외상은 "일본 기업의 개별 배상은 불가하다는 게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중국 근로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에서 기업 측의 자발적 대응과 피해자를 위한 관계자의 노력을 촉구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본 외상의 발언은 자국 최고재판소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무시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수십만에 이르는 피해자의 소송 사태에 앞서 양국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