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에 자신감이 있으면 위기도 기회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운도 따랐지요." 지난 4일 경기 판교사무소에서 만난 오원석 코리아에프티 회장(63)은 작은 체구에 뚝심이 묻어나는 차분한 말투로 회사 성장과 품질에 관한 확고한 소신을 털어놨다. 그는 향후 10여년 뒤의 회사 모습을 이미 그려놓고 있었다.
오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두산중공업 등에서 플랜트쪽 엔지니어로 일했다. 지난 1987년 플랜트 경기가 어려워 일감이 없었을 때 중소업체(반도체공정 필터 생산업체인 코리아에어텍)를 경영하던 친구의 '신사업 개발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30대 중반. 일본 업체에서 전량 수입해쓰던 카본 캐니스터를 그해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2∼3년은 현대차에 납품하면서 신사업은 순탄한 듯했다. 하지만 1990년께 당시 매출 1000억원이 넘던 중견업체가 똑같은 제품을 내놓았다.
오 회장이 말하는 첫 위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 기술을 그대로 베껴 제품을 만들었지요. 당시 이걸로 살아가는 중소업체(매출 60억원)인데, 매출의 절반이 한순간에 사라진 겁니다. 마음고생 많이 했지요."
오 회장은 그래도 고집스럽게 최고의 품질로 승부했다. 경쟁사는 제품 출시 3년 만에 대형 품질사고가 터졌고, 현대차는 그 회사의 납품을 거절했다. 경쟁사에서 제품을 공급받던 기아차, 대우차도 코리아에프티에 부품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배웠지요. 품질을 완벽하게 하는 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요."
이후 오 회장은 회사를 키우기 위해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자동차 경량화 부품인 플라스틱 필러넥이다. 1994년 이탈리아 업체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는 회사를 곤경에 빠뜨렸다. 환율이 급등해 회사는 심각한 자금난에 직면했다. 이를 막기 위해 오 회장은 그 전부터 회사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이탈리아 자동차부품사(SISs.r.l)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유상증자를 성사시켰다. 이탈리아 업체는 액면가의 4배로 증자에 참여했고, 코리아에프티는 200만달러가 넘는 자금을 조달했다. 이 돈으로 큰 고비는 넘겼다. 이때 대주주 지분은 이탈리아업체(지분 34.91% 보유)로 넘어갔고 오 회장은 전문경영인을 맡게 됐다.
오 회장은 자금을 더 조달하기 위해 고민했다. "제품 공정상 20%가 스크랩(제품 부산물)으로 나옵니다. 5년여간 100t에 가까운 스크랩이 쌓였고, 이것을 되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원료 공급사인 스위스업체(EMS) 사장을 만나 '그걸 가져가서 다시 원료로 만들 수 있으니 사가라'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오 회장은 스크랩을 1㎏에 1달러50센트에 팔았다. 원래 원료 가격은 1㎏에 5달러였다. 이렇게 150만달러를 추가로 확보하면서 외환위기를 넘겼다.
오 회장은 품질에 대한 신념만큼, 직원들에 대한 믿음도 확고하다. "말단 사원에서 시작한 사람도 학력을 떠나 능력이 있으면 사장이 될 수 있는 회사로 만들 겁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품질을 최우선하는 문화가 바로 코리아에프티의 정신입니다."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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