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카, 전기차, 수소차.' 자동차 시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주력하는 분야는 제각각이다.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친환경차 분야에 노력을 기울이는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뒤떨어졌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 불확실한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기아자동차의 대응전략은 '기본기에 충실하자'는 쪽이다. 불확실한 미지의 시장에 역량을 분산하기보다는 우선 기술과 품질, 디자인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린 뒤 이를 친환경 자동차시장으로 이어간다는 게 골자다.
■현대차 "고급화 우선→친환경차로"
현대차가 내년 상반기 미국과 유럽 시장에 내놓을 신형 제네시스에는 글로벌 시장을 돌파할 현대차의 전략이 담겨 있다. 현대차는 신형 제네시스에 '최고 수준의 디자인과 상품성을 갖춘 프리미엄 세단'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했던 시대를 마감하고 품질을 높여 '제값 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어떤 회사든 품질을 강조하지 않는 회사는 없다. 그러나 현대차의 프리미엄 품질 확보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생산효율, 가격 경쟁력과 함께 시너지를 발휘해 경쟁사를 앞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신형 제네시스에 별도의 브랜드를 사용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도요타가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로 성공을 거둔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네시스에 현대차 브랜드를 그대로 달기로 했다. 브랜드 자체의 가치를 높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렉서스 성공의 부작용으로 도요타 브랜드가 '싸구려 차'로 인식됐듯이 현대차를 그렇게 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연구원 홍지상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 자동차가 품질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왔다고 평가되지만 앞으로는 프리미엄 수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며 "적게 남겨서 많이 파는 방법도 있지만 이제는 어떤 차를 얼마나 받고 팔 것인가가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한국, 수소차에서 선도적 위치
기존 자동차 시장의 품질경쟁과 별개로 미래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 자동차가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한국차는 경쟁에서 한 수 뒤진다는 평가다. BMW.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를 집중 육성하고 있는 데 비해 현대.기아차는 전기차보다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수소연료전지차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차세대 친환경차에 대해 글로벌 업체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을 연구하는 상황에서 어떤 연료방식이 대세가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당장은 다량의 전지를 탑재하는 전기차가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차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투싼ix 수소연료전지차는 1회 수소 충전으로 최대 594㎞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도요타와 벤츠에 비해 2년가량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선두업체보다 약 2년 출발이 늦었는데도 가장 먼저 양산에 성공했다. 지난 2월 양산에 들어간 수소차 투싼ix는 세계 시장에서 40여대가 팔렸고, 2015년에는 1000대 이상이 팔려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디젤차를 무기로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하이브리드카를 중장기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는 도요타 역시 2015년을 목표삼아 수소차 개발에 매진 중이다. 특히 BMW와 도요타, 닛산과 벤츠 등 일본 차와 독일 차 업체들이 합종연횡 전략을 펴고 있다. 개발 비용이 과도하게 들어가는 데다 양쪽 인력을 투입해 비용과 개발 기간을 줄이자는 것이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현대차가 세계 처음으로 양산형 수소연료전지차 생산을 시작할 정도로 국내 기술 수준이 높지만 활성화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며 "이에 비해 전기차는 세계 각국이 공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칫하면 실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친환경차 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고 각 차종별로 기능이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핵심 기술은 이미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맞춰 얼마든지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시대 가속도 붙는다
아직 시장규모가 초기단계이지만 최근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의 확장 추세에 대해 우리 기업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친환경 자동차 판매는 최대 시장인 일본시장의 감소에도 불구, 올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한 86만대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미국과 유럽시장이 급성장세를 보이면서 지역적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를 보였다. 일본은 친환경차 지원 정책의 종료 여파로 12% 감소한 반면 미국이 신차 효과에 힘입어 29%, 유럽은 신차 출시와 프랑스 정부의 지원 정책으로 55% 성장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신주연 연구원은 "올 상반기 친환경차 시장의 최대 성장 동력은 전기차 등 신차 출시 확대로 볼 수 있다"며 "상품성을 겸비한 신모델 출시가 이어지며 기존 소수 모델 판매에 편중됐던 친환경차 시장 구조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BMW는 지난해 자본투자의 42%가량을 전기차에 쏟아부었고, 92억달러 규모의 전체 연구개발(R&D) 비용의 17%를 사용했다. 노베르트 라이트호퍼 BMW 회장은 "전기차 i3와 같은 모델은 반드시 필요하다. 투자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미국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와 협력을 강화하며 관련 사업 육성에 나섰다. 현재 테슬라 지분 4.3%를 보유한 벤츠는 테슬라와 추가협력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환경부 박광칠 전기차보급추진팀장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 움직임을 보면 기존 내연기관으로 이를 만족시킬 수 없는 시기가 곧 온다"며 "가격과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할 때 현재 나온 친환경차 중에서는 전기차가 대안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전했다.
정부의 정책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제주대 전산통계학과 박경린 교수는 "지금까지는 주로 대기업 중심으로 정책 지원이 이뤄지다보니 전기차의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한 뒤 "이제는 문턱을 낮춰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전문 중견.중소기업을 양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탐사보도팀 최경환 팀장 김성환 박하나 김병용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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