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영화음악을 맡은 영화들은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던 때가 있었어요.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2001)는 유명한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도 받았는데 국내에서는 흥행하지 못했죠. 그래서 누가 영화음악 하자고 하면 '내가 하면 흥행 참패하는데도 괜찮겠냐'고 확인부터 했습니다. 그러다 스캔들(2003)이 흥행한 뒤부터는 '이병우가 음악 만들면 흥행한다'는 괴소문이 충무로에 돌기 시작했죠."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면서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로, 무엇보다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병우 감독(사진)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음악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평가받는 지금도 자신의 명성을 '괴소문' 정도로 표현하는 겸손함 또는 여유로움을, 그는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이병우의 힐링콘서트'에서 만난 이 감독은 기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비롯해 자신이 만든 영화음악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기까지의 음악인생을 서툰 말솜씨지만 진솔하게 이어나갔다.
그는 "주변에 기타 치는 친구가 많았는데 집안의 반대나 먹고 살 걱정 때문에 하나둘 기타를 놓더군요.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잘 치던 친구들이 다 떠나서 제가 이 자리까지 오게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기타 치는 자녀들 때문에 속상해 하시는 부모님들 너무 걱정 안하셨으면 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놓지 않게 도와주세요"라고 털어놨다.
조용한 아이였던 이 감독은 11살 때부터 기타를 치면서 음악적 감수성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가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던 데에는 학창시절 장기결석에 기타만 붙잡고 있던 아들을 이해해 주신 부모님의 용기도 한몫을 했다.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했어요. 영화 '괴물'은 '부정(父情)'이라는 내용에 판타지가 결합된 영화였는데 아버님께서 제 어린 시절 자주 들려주시던 노래가 생각나더라고요. 이 영화의 주제곡은 그 노래의 리듬을 모티브로 삼아 멜로디를 얹어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곧바로 기타를 들고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4분의 2박, 이른바 '뽕짝 리듬'이 영화 '괴물'의 테마곡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음악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류스타 배용준의 첫 영화 데뷔작이었던 영화 '스캔들'도 원작이 18세기 프랑스 귀족사회가 배경이었던 만큼 당시 유럽의 바로크 음악 형식을 콘셉트로 잡았다.
그는 "영화음악을 만들 때 웅장한 오케스트라 구성으로 편곡하거나 여러 상황에 맞춰 변주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제 영화음악의 시작은 기타에서 비롯된다"며 자신이 방황하던 시절 만들었던 기타 연주곡 '새'를 들려주며 초심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미래가 안보여 답답했던 20대 때 이 곡을 만들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혼자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열정이 있었죠. 제 음악을 듣고 누군가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저의 행복"이라고 덧붙였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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