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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식 변호사 “中企, 제품 기획단계부터 ‘미래의 특허분쟁’ 대비해야”

조용식 변호사 “中企, 제품 기획단계부터 ‘미래의 특허분쟁’ 대비해야”
조용식 변호사 사진=박범준 기자

"지식재산권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해 판사직도 내놓았습니다. 1998년 당시 지재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족했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국내 지식재산권 분쟁에서 최고로 꼽히는 특허법인 다래의 조용식 변호사 이야기다. 조 변호사는 특허법원 1기 판사 출신으로 박승문 변호사와 1999년 다래를 설립했다.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89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일하다 1997년 일본 도쿄대로 연수를 떠났다. 1년짜리 짧은 연수였지만 그 시간은 조 변호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한국은 특허법원 설립을 1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일본은 이미 20년 전부터 지재권 분쟁이 활발했더군요. 내가 이렇게 몰랐던 분야가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죠."
한국에 돌아온 그는 특허법원 1기 판사가 됐지만 이듬해 사표를 냈다. 한국 사법기관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담당 분야를 바꿔야 하는 데서 한계를 느낀 것이다. 법복을 벗은 그는 박승문 변호사와 손을 잡았고 변리사 2명이 합류해 꼬마 로펌 다래가 탄생했다. 특허법원 판사 출신이 만든 로펌이란 소문이 나자 일거리는 무섭게 늘었다.

"시대 덕도 많이 봤어요. 벤처 열풍이 불면서 특허 출원도 급증했으니까요."

특유의 겸손으로 애써 포장했지만 다래의 성장세는 무섭다. 현재 다래는 변호사와 변리사를 합쳐 35명, 일반 직원까지 130여명의 로펌으로 성장했다.

15년간 지재권 분쟁 현장에서 지내온 소회를 묻자 그는 '소송이 늘수록 희망을 봤다'고 답한다.

"기업이 보통 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면 바로 소송이 들어옵니다. 경쟁업체들이 자기 밥그릇에 위협을 받는다 싶으면 소송으로 가는 거예요. 최근 한국을 상대로 한 외국 기업의 소송이 늘고 있다고 하죠? 그건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이 잘나간다는 증거예요."

분쟁 영역도 과거 정보기술(IT)에서 화학, 바이오, 소재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그는 외국 기업에 소송을 당하는 국내 기업의 사례를 가리켜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경험'이라고 표현한다. 경쟁업체가 소송을 치르는 과정을 보기만 해도 공부가 된다는 뜻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 한번 받으면 대기업도 휘청휘청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수출 중심 국가는 지재권 분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하는데 이게 눈앞에 닥치지 않으면 잘 안 하게 돼요. 우리 기업들이 소송을 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충 준비했다가는 소중하게 키워 온 우리 기업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을 가질 수 있지요."

최근에는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하는 사례도 늘었다. 조 변호사는 이 역시 긍정적인 신호로 본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문제로 복잡하게 얽혀 있죠. 예전엔 한국에서 재판을 하면 반일감정 때문에 불리한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이젠 아닌 거예요. 그만큼 한국 사법부가 공정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산업 구조가 흡사한 만큼 향후에도 분쟁사례가 넘쳐날 것으로 본다. 지재권 분야에서 수십년이나 앞선 일본과의 대결에서 불리한 점은 없을까.

"한국은 추진력이 대단한 나라예요. 물리적인 시간이 뒤처져 있다 해도 지금은 실력이 비슷하다고 봅니다. 일본은 신중하긴 하지만 매사에 꼼꼼하게 보다보니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순발력이 중요한 지재권 분쟁에서 한국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습니다."

그는 최근 영업 비밀 유출이 급증하는 것도 주목하고 있다. 이동식저장장치(USB)메모리나 SD카드 등 소형 저장매체 기술이 발달하면서 영업 비밀을 빼내는 것이 쉬워진 탓이다.

그는 "법은 갈수록 엄격해지고 기업들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 분위기"라면서 "연구, 생산 현장에 있는 인재들이 지재권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중소기업들의 경영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더했다. 당장 물건을 만들어 파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상품 기획 단계부터 특허와 지재권 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특허 소송은 대법원까지 갈 경우 통상 5년가량 걸린다. 이 과정에서 돈도 많이 들고 본업에도 차질을 빚어 소송을 포기하기 일쑤다.

지재권 전문 판사가 양성되기 힘든 현실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지금과 같이 판사가 순환해야 하는 시스템에서는 한 분야에 정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판사의 결정이 존엄성을 갖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본 고등재판소 지식재산권부 부장은 한 사람이 15년씩 근무합니다. 지재권 판사로만 30년간 근무하는 사람도 봤어요. 심판 하는 사람이 심판 받는 사람보다 전문성이 있어야 재판 결과에 승복하는 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wild@fnnews.com 박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