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 시간이 촉박해 티구안만 타는가 싶었는데, 인스트럭터가 시계를 힐끗 보더니 투아렉을 타러 가자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 눈치였다. “허리 업”을 외치며 종종걸음으로 걷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비장함도 느껴졌다.
▲ 차에 직접 타고 있으면 객관성을 잃는다. 생각보다 훨씬 무섭다.
투아렉을 타는 코스는 마치 액션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거대한 시소를 통과하기도 하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웅덩이,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정도의 경사로, 네바퀴 굴림차에게 두바퀴로만 갈 것을 강요하는 구덩이 등등. 오히려 직접 차를 몰지 않아서 공포감은 더 했다. 인스트럭터에게 “캄 다운”이라고 몇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그게 독이 됐는지 태연하게 웃으며 그는 우리를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폭스바겐 아우토슈타트에 마련된 오프로드 코스인 ‘올-터레인 트랙(All-Terrain Track)’에서 경험한 투아렉에는 3.0 TDI 엔진이 장착됐다. 하지만 국내와 달리 에어서스펜션을 옵션으로 적용할 수 있다. 가장 인기가 있는 옵션이라는게 인스트럭터의 설명이다.
▲ 저단 기어 및 앞뒤 디퍼런셜 잠금 기능이 추가된 4X모션
오프로드에서는 아무래도 차체가 높은게 유리하다. 하지만 차체만 높다고 험로를 잘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땅을 짓누르며 달릴 수 있어야 한다. 투아렉은 아우디, 포르쉐 등이 속한 폭스바겐그룹에서 가장 오프로드를 잘 달릴 수 있다. 폭스바겐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통들어 4모션(4Motion)이라고 하는데 차종 마다 각기 다른 방식이 적용됐다.
총 3가지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브랜드 특징을 내세우기 보다는 각 차종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고려해 시스템을 적용하는 점은 인상적이다.
◆ "투아렉은 특별해"…저단기어까지 적용된 4X모션
국내서 판매되고 있는 투아렉에는 아우디 Q7과 동일한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됐다. 폭스바겐 플래그십 모델인 페이톤도 동일하다.
▲ 페이톤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아우디 콰트로와 동일하다. 다만 최대 구동력 배분이 페이톤은 70%까지다.
투아렉과 페이톤에 적용되는 ‘토센 디퍼런셜(Torsen Differential)’은 평상시 앞뒤 50:50으로 구동력을 분배한다. 상황에 따라 한쪽에 최대 70%까지 구동력을 높일 수 있다. 언제나 네바퀴에 힘을 전달하기 때문에 연비는 다소 취약하지만 눈길 또는 빗길 등의 도로상황이나 고속주행에서도 전자식 사륜구동 방식에 비해 더 안전하다는 것이 폭스바겐의 설명이다.
아우토슈타트에서 경험한 투아렉은 조금 특별했다. 오프로드 성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4X모션(4XMotion)이 적용됐다. 4X모션은 투아렉에만 적용되는데 오프로드에 특화된 주행모드가 추가됐다. 또 구조적으로도 일반 4모션과 다르다.
▲ 4모션과 4X모션의 구조적 차이점.
4X모션은 앞뒤 한쪽으로 100%까지 구동력을 보낼 수 있다. 트랜스퍼 케이스에는 감속 기어(Reduction Gear)가 장착됐다. 좌우의 구동력은 EDR(Electric Differential Lock)을 통해 독립적인 제동이 이뤄진다. 오프로드를 위한 ‘로우 레인지(Low Range)’가 적용됐고 센터 및 후륜 디퍼런셜을 개별적으로 잠글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단 한바퀴에만 100%의 구동력을 집중시킬 수도 있다.
▲ 4X모션은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를 편안하게 달릴 수 있다.
회전하는 원통이 연이어 놓인 코스를 큰 무리없이 통과하는 투아렉을 통해 기계식 사륜구동의 빠른 반응를 체험할 수 있었다. 간헐적인 전자장비의 개입 보다는 확실하게 노면에 토크를 전달하는 능력이 더 느껴졌다. 앞뒤 한쪽이 미끄러지는 상황에서도 유기적인 구동배분으로 쉽사리 난관을 헤쳐나간다.
◆ 폭스바겐이 가장 널리 쓰고 있는 '할덱스' 사륜구동
폭스바겐은 엔진이 가로로 배치된 모델에는 스웨덴 할덱스(Haldex)의 사륜구동 방식을 사용한다. 폭스바겐을 비롯해 아우디, 람보르기니, 부가티, 포드, 볼보, 랜드로버, 캐딜락 등도 할덱스의 사륜구동 시스템을 이용한다.
폭스바겐에 적용되는 할덱스 방식의 장점은 무게가 가볍고 생산원가가 저렴하다. 또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소형차에 특히 적합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평상시에는 앞바퀴에 대부분의 구동력을 보내기 때문에 연비가 우수하다. CC 4모션의 공인연비는 리터당 15.1km, 일반 모델은 리터당 15.6km로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됐지만 차이는 미미하다.
▲ 7세대 골프에 적용된 5세대 할덱스 방식.
할덱스 방식은 파워트레인에서 나오는 힘이 전륜 디퍼런셜을 거쳐 프로펠러 샤프트, 할덱스 클러치, 후륜 디퍼런셜 순으로 전달된다. 평소에는 전륜으로만 움직이지만 앞바퀴가 완전히 헛도는 상황에서는 뒷바퀴로 대부분의 구동력을 보낼 수 있다. 또 단순하게 바퀴가 헛도는 상황이 아니라 속도, 조향각도 등을 ECU가 분석해 뒷바퀴로 구동력을 분배한다.
이와 함께 차체자세제어장치(ESP)와 전자식 디퍼런션(EDS), 토크 벡터링 시스템(XDS) 등과 함께 연계돼 탁월한 코너링과 최적의 접지력을 보장한다고 폭스바겐은 설명한다.
◆ 역사와 전통의 폭스바겐 4륜 구동
폭스바겐이 처음 사륜구동을 도입한 것은 1985년부터다. 당시 폭스바겐의 사륜구동 이름은 ‘싱크로(Syncro)’. 폭스바겐의 미니밴 T3를 시작으로 1986년부터 2세대 골프, 2세대 제타, 2세대 파사트 등 다양한 차종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1998년부터 비스커스 커플링 방식의 싱크로 대신 할덱스 클러치를 사용하면서 이름도 4모션으로 바꿨다. 할덱스 클러치 시스템은 폭스바겐과 함께 성장하고 있으며 7세대 골프에는 5세대 방식이 적용됐다.
▲ 타이어는 한국타이어 아이셉트 에보가 장착됐다.
◆ 대세는 사륜구동…연비까지 챙긴다
사륜구동 시스템이 SUV의 전유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여러 장점보다는 연비에 취약하다는 단점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꺼려하기도 했다. 국산차는 아예 승용 AWD를 내놓을 생각도 못했고 수입차 업체도 국내서 선뜻 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여름이면 집중호우와 겨울엔 폭설이 내리는 곳에서는 사륜구동처럼 마음 든든한 것도 없다. 쌍용차 체어맨이 국내 유일한 국산 사륜구동 세단이었지만 현대차가 신형 제네시스에 사륜구동 시스템을 추가하며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입차 업체는 더욱 적극적이다.
아우디는 콰트로(Quattro), BMW는 xDrive, 메르세데스-벤츠는 4매틱(4Matic) 등으로 불리는 사륜구동 모델의 출시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도 다양한 4모션을 국내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앞장서서 디젤 엔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꾼 것처럼 폭스바겐 브랜드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바꿔겠다는 입장이다.
/sy.kim@motorgraph.com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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