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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vs책]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vs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책vs책]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vs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누구나 한때는 특별한 삶을 꿈꾼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 처음에는 분개를, 그다음에는 좌절을, 마지막엔 체념을 거듭하며 나는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가까스로 차선의 궤도에 안착해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평범한 게 좋은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십대 후반이 되고 보니 그래도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았던 몇 년 전의 시절이 현재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사는 극소수 유명인사의 365일뿐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나 허투루 돌아가는 시간은 없다는 것도.

통상적으로 기록되는 역사는 리더나 영웅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불특정 다수의 시간을 모아놓으면 그것은 살아있는 역사다. 요나스 요한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 펴냄) 주인공 알란의 삶이 그렇다. 100세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뛰쳐나온 알란은 충동적으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훔쳐 의도치 않은 탈주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젊은 날 겪은 20세기의 사건들이 현재 시점과 교차되면서, 괴짜 노인의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인 줄로만 알았던 이 책은 비로소 놀라운 폭발력을 과시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연과 기막힌 행운 혹은 불운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맥이 빠지지 않는 건, 정작 스스로는 별생각 없어 보이는 알란의 생을 통해 국가와 이념, 종교를 아우르는 역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고 마른 노인의 삶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역사의 가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까치 펴냄)는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인류의 주요한 발견을 재조명한다. 이 책의 원제가 'At Home'이라는 것에서부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번역서이기 때문에 영국을 비롯한 서양 중세시대의 역사에 그 틀이 고정돼 다소 한계는 있지만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역사의 맥을 짚어본다는 점이 참신하다. 지금은 당연하게 쓰이는 주변 사물의 탄생 과정부터 시작해 그것에 얽힌 인물과 동시대의 사상까지 방대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지겹지 않은 건 빌 브라이슨 특유의 문체 때문일 것이다. 다소 냉소적이지만 위트를 잃지 않으며 풍부한 지식에서부터 오는 거리낄 것 없는 비평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란 무겁고 따분하며 지극히 훌륭하고 높은 사람들이 이끌어간 것이 아니라 작은 데서 발전하였으며 지금을 살아가는 '나' 역시 그 흐름에 기여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는 사실을 느끼게끔 해준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의 머리기사는 늘 커다란 사건을 다루고 있어 이를 관조적으로만 바라보기가 쉽다.
하지만 세상에는 엄청나게 대단한 사건·사고보다 작고 사사로운 일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100세 노인의 삶이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가정집의 층계와 테이블의 나이만큼이나 인간의 삶이 점차 편리하게 바뀌었듯 느린 시간이 천천히 모여 역사의 축을 이룬다. 그것이 우리가 새로 시작하는 2014년을 또다시 최대한 안녕히 살기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다.

나문희(인터넷교보문고 MD)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