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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트의 골짜기,네안데르탈인처럼 고독한 현대인이여

플루트의 골짜기,네안데르탈인처럼 고독한 현대인이여

소설 속 '나'보다 열다섯 살 위인 의사 현경우는 뉴욕에서 안식년을 보내다 잠시 유럽여행길에 올랐다. 그 여행의 관문이 된 곳은 파리. 15년 전 파리4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여름날 어느 저녁 뤽상부르 공원 근처 중국식당에서 그와 처음 만났다. 친구와 식사 중이던 내게서 한국말이 튀어나온 적은 없었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나를 자기의 '동족'으로 파악하고 접근해왔다. 하루에 500프랑을 받는 조건으로 사흘 동안 그의 파리 가이드가 된 나는 예정된 일정을 끝내고 그를 북역에서 배웅했다.

3주 뒤 다시 파리로 돌아온 그를 마주했을때, 뒤셀도르프 근처 한 골짜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골짜기의 동굴을 말할 때 그의 눈에 액체가 비쳤고, 내 콧등도 시큰해졌다. 뉴욕으로, 다시 서울로 돌아간 현경우의 소식을 확인한 건, 내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로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어느 신문의 부음란에서 그의 이름 석 자를 얼마 전 보았다. 신문 부고란의 속물성에 치를 떠는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처절한 슬픔에 버무려져 있었다.

고종석의 소설 선집 표제작 '플루트의 골짜기'는 비정한 현대인의 삶 속의 외로운 실존을 다룬 단편이다. 속물적인 타락, 정체 없는 비관, 허무주의적인 현실 긍정이 뒤섞여 있다. 저자는 주인공들의 근원을 뒤셀도르프 네안데르 골짜기 동굴에서 가져온다. 그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은 두개골의 구조 등에서 볼 때 호모사피엔스의 별종이다. 하지만 이 네안데르탈인이 야수였던 건 아니다. 곰의 허벅다리 뼈로 플루트를 만들 만큼 음악적 지능이 있었다.

그러니 언어적 지능도 상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지 않고 현생 인류와 섞여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그 후손이진 않을까. 소설은 이 상상을 쫓아 어둠을 헤쳐간다. 그리고 도달하는 곳은 "인간에 대한 미움과 경멸을 눅이는" 네안데르탈인의 플루트 소리다.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