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런 건 아니지만 친한 사이라도 대학 교수는 친구나 지인을 학생이라고 여긴다. 검사(출신)는 주변 사람을 피의자로 생각해 말을 좀 함부로 하는 편이다. 의사는 환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친구들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모두 오래된 직업의식 탓이다. 특히 개업 의사들은 병원 내에서는 거의 '황제'급이다.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네댓명 되는 간호사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물론 일부 의사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어느 날 개업 의사인 친구와 함께 라운딩을 했다. 캐디(라운딩 디자이너)가 거리를 잘못 가르쳐 준 건지, 자신이 잘못 친 건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마음먹고 친 공이 그린을 훌쩍 넘어가자 그 친구는 대뜸 캐디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닌가. 그리고 잔소리가 1분여간 이어지자 캐디의 얼굴은 사색이 되다 못해 울먹거리기 직전에 이르렀다.
필자가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가씨, 미안한데…저 분의 직업이 의사거든. 그래서 필드에 나와서도 아가씨를 자신의 간호사로 만만히 여겨 말을 함부로 하니 이해 좀 하세요"하고 부드럽게 말했더니 금세 얼굴이 풀리는 걸 봤다.
캐디를 못살게 구는 골퍼가 일부이긴 하지만, 같은 라운딩 조의 네 명 중 한 명일 경우가 많아 몇 시간 동안 민망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왜 캐디를 같은 인격으로 대하지 않을까?
첫째, 돈(수당)으로 4~5시간을 임차하는 것으로 여겨 그 시간만큼은 자신의 하인으로 오인하는 것. 하지만 캐디피는 카트를 운전해주고 코스 내 각종 정보와 전략사항을 전달하며 매끄러운 진행을 돕는 데 대한 수고료이므로 '함부로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더구나 신체의 일부를 접촉한다든지, 성적 농담을 던지는 것은 매우 심한 일탈 행동이므로 동반자들이 넌지시 주의를 줘야 한다.
둘째, 성장 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캐디를 멸시하거나 하대하는 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과 굴욕을 주는 행동에서 쾌락을 얻는 가학적 증세에서 비롯된다.
평소 자신을 향한 파괴적 충동을, 일종의 해방감을 얻을 수 있는 야외에 나왔다고 해서 외부 대상(캐디)에게 퍼부어 쾌락을 얻으려는 비정상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캐디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연약한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딸이나 조카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명랑 골프'로 전환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건전하면서도 웃음꽃을 피우는 유머가 얼마나 많은가.
지난번 칼럼을 쓰면서 캐디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음담패설'인 것을 알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캐디는 차량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교통신호등이라고 가볍게 여기면 코스 내에서 얼굴 붉히는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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