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천주산 일대는 한때 파괴의 공간이었다.
파괴의 주범은 채석장. 질 좋은 화강암이 나기로 유명한 천주산에는 1960, 70년대부터 20여개의 채석장이 성업했다. 천주산 채석장에서 생산된 화강암은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인천국제공항 등 국내 주요 건축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명성을 얻어 '포천석'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약 30년이 이어진 포천석의 명성은 천주산에서 더 이상 양질의 화강암이 생산되지 않으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많았던 채석장들은 2000년대 초에 대부분 버려졌다. 옛 영광을 뒤로한 채, 채석장은 옮기다 만 폐석과 채석으로 훼손된 산자락, 몰래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폐타이어 등으로 쓰레기장과 같은 흉물이 됐다.
파괴의 공간으로 방치되던 천주산 일대는 최근 치유의 공간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그 중심이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위치한 '포천 아트밸리'다. 포천시는 폐채석장을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사업 계획을 세우고 2005년부터 155억원을 들여 개선작업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지난 2009년 10월 문을 연 것이 국내 최초 폐채석장을 활용한 친환경 문화예술공원 포천 아트밸리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풍경
포천 아트밸리에 도착하면 가파른 언덕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경사도가 높아 아래에서는 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언덕 위아래로 운영되는 418m의 모노레일을 타고 언덕 위로 오르면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운 호수 '천주호'를 볼 수 있다. 50~80m의 거대한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7400㎡ 호수의 모습은 한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풍광이다.
천주호의 아름다움은 깨끗함에도 있다. 1급수인 천주호에는 가재와 도롱뇽, 버들치 등이 살고 있다. 거대한 석벽 위에 조성된 전망대 '소원의 하늘공원'에서 아래의 천주호를 바라보면 최대 수심 20m의 바닥이 보일 정도다. 김대동 포천시 주무관은 "옛날 채석장에서 돌을 캐기 위해 산자락을 아래로 파고들어 가던 과정에서 거대한 석벽이 만들어졌고 그 아래에서 지하수가 올라오면서 지금의 석벽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천주호'가 만들어졌다"며 "지하수와 함께 빗물이 계속 유입되면서 연중 마르지 않아 계절마다 색다른 풍광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포천 아트밸리의 중심인 천주호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 문화공연장 역할도 하고 있다. 천주호 내에는 220㎡의 무대와 3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소공연장'이 설치돼 있다. 소공연장에서는 매 주말 클래식 음악 연주회부터 뮤지컬, 인디밴드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무대를 둘러싼 석벽에 의해 독특한 소리울림 현상이 만들어져 소공연장의 인기가 높다.
천주호 아래에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화강암 조각을 감상할 수 있는 '조각공원'이 있다. 조각공원은 치유의 과정을 통해 재탄생한 곳이다.
옛 채석장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거대한 폐석이었다. 채석장 곳곳에 뒹구는 폐석들은 덤프트럭을 이용해 옮기려 했으나 수천대의 차량이 필요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폐석으로 계곡을 만들고 석축을 쌓아 가파른 경사지에 평평한 마당을 만들어 이곳에 조각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실제 조각 공원에 있는 20여점의 화강암 조각은 옛날 폐석을 활용했다고 한다.
포천 아트밸리에서는 단순히 눈으로 즐기는 공원을 넘어 온몸으로 체험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10년 만들어진 교육전시센터에서는 한지공예과 폼아트, 소품인형, 흙조형, 윈도 페인팅 등 다채로운 창작.체험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수능을 마치고 포천 여행 중에 아트밸리를 찾은 구슬예, 최누리씨는 "옛날 이곳이 채석장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는데 인공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고 놀랍다"며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공부만 하며 바쁘게 달리기만 했는데 탁 트인 자연을 보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찾는 치유의 공간
포천 아트밸리는 지난해 '경기도 최고'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 최고'란 최초(最初), 최고(最古), 최대(最大), 최다(最多), 최소(最小) 등의 가치를 가진 유무형 자산 등 도의 자랑거리를 모은 '경기 기네스(GGuinness)'를 만들기 위해 지난 2010년 시작됐다.
'경기도 최고'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포천 아트밸리를 찾는 사람들은 연간 30만명에 가깝다. 지난 2009년 10월 처음 문을 연 이후 지난 2010년에 11만명, 2011년 19만명, 2012년 23만명, 지난해 28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김 주무관은 "평일에도 3개 주차장 가운데 1개 정도가 가득 차며 주말의 경우 3개의 주차장도 부족해 포천 아트밸리 앞에 있는 43번국도까지 주차행렬이 이어진다"며 "이 때문에 주말이면 300~400대의 차량이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포천 아트밸리가 한 해 수십만명이 찾는 명소로 부상한 것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공익적 기획 의도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포천시는 기획 단계부터 100여명의 자문위원을 구성해 아트밸리를 공익적 차원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방문해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 주무관은 "아트밸리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운영료의 70% 선이다"라며 "입장료를 5000원까지만 올리면 지금 관람객 수를 고려할 때 당장에라도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공익 차원에서 아트밸리를 운영 중인 만큼 입장료를 인상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현재 포천 아트밸리의 입장료는 어른 기준 3000원이지만 포천 거주자나 군인, 어린이, 노인 등은 입장료를 할인해주거나 받지 않고 있다.
■'힐링문화예술공원'으로 가는 길
일본 나오시마섬은 한때 구리 제련소가 있던 세토내해의 투박한 섬이었다. 지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외면받았던 낯선 섬에 예술인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섬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다양한 미술관이 들어서고 작품들이 전시되면서 투박했던 나오시마섬은 '아트섬'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아트섬을 찾는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작품을 통해 지친 마음을 치유받고 싶어서라고 한다.
포천 아트밸리는 '한국판 나오시마섬'을 꿈꾸고 있다. 아름다운 공원과 문화공연이 열리는 현재의 모습에서 한층 발전해 누구나 찾아와서 지친 마음을 치유받고 쉴 수 있는 이른바 '힐링문화예술공원'으로 도약하고 싶다는 것. 이 같은 아트밸리 미래의 시작은 4월에 문을 여는 '천주산 천문대'다. 천문대는 아트밸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기존의 전시관으로 만들어졌던 건물을 개조해 별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중이다.
또 포천시는 주차장 아래 2만9752㎡의 땅을 매입한 상태다.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아트밸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며칠을 쉬며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추가적인 사업이 마무리되면 포천 아트밸리는 완전한 힐링문화공원으로 도약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