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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공시족·삼성수능족이 왜 나왔나

정상이 아니다. 구직을 위해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 1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4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작년 취업시험 준비자는 96만명에 달했다. 6년 전에 비해 41% 증가한 규모다. 청년층 인구는 추세적 감소세다. 정상이라면 취업준비생 숫자도 줄어드는 게 맞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이는 청년층 실업자가 해마다 누적된 결과다.

더 놀라운 건 96만명 가운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족이 31만9000명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올해 안전행정부는 국가공무원 4160명, 지방공무원 1만3701명 등 총 1만7861명의 공무원을 공개채용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약 32만 공시족이 시험에 붙을 확률은 고작 5.6%, 100명에 대여섯명꼴이다. 커트라인을 넘지 못한 공시족은 내년을 기약한다. 덩달아 공시 재수, 삼수도 늘고 있다.

민간기업 취업준비생도 26만명으로 집계됐다. 13일 전국 85개 고사장에서 치러진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는 청년 구직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고사장 밖엔 자식들을 응원하러 온 부모들의 자가용 행렬이 줄을 섰다니 '삼성수능'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삼성은 올 상반기 4000~5000명을 뽑아 계열사에 배치할 계획이다. 총 9만2000명이 응시해 5000명을 뽑으면 5.4%의 확률이다. 공시족 합격 확률과 비슷하다.

공무원, 삼성맨이 되겠다고 우리 젊은이들이 벌이는 '사투'는 눈물겹다. 원인은 자명하다. 공무원, 삼성보다 더 좋은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대책도 자명하다. 공무원, 삼성보다 더 좋은 직장을 만들면 된다. 문제는 어떻게 만들 것이냐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기성세대의 충고는 고답적이다. 박근혜정부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2017년까지 청년 일자리 50만개를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은 지난 3월 9.9%를 기록하는 등 되레 증가세다.

외환위기 이후 들이닥친 해고 바람 속에 직장인들은 가늘고 길게 사는 요령을 터득했다. 공무원이 최고 직장으로 떠오른 것도 이때부터다. 공무원·대기업으로 몰리는 청년들의 발길을 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창업 활성화다. 우리도 미국처럼 '대박'을 터뜨리는 벤처 창업자들이 속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현실은 딴판이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대학생 창업자 수는 졸업생 대비 0.0007%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10~20%)은 물론 중국(2%)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창업 과정의 복잡한 행정절차 등이 발목을 잡는 요소다. 한국 사회에서 창업 실패는 곧바로 개인파산·신용불량으로 이어진다.

재기는 극히 드물다. 이런 조건에서 누가 선뜻 창업의 길로 나서겠는가. 번듯한 명함이 없으면 맞선자리도 잘 안 들어온다고 한다. 창업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그냥 둔 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청년들의 도전정신 결여만 탓해선 답이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