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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날, 근로자의 비애.. 수백명 모여든 새벽 인력시장

근로자의 날, 근로자의 비애.. 수백명 모여든 새벽 인력시장
▲ 근로자의 날을 맞은 1일 새벽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이 일자리를 구하러 나온 건설일용직 근로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근로자의 날이든 어떤 날이든 상관없으니 오늘은 일을 구했으면 좋겠다."(건설일용근로자 박모씨)

5월 1일. 달력에 빨간 날이 아닌데도 근로자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근로자를 위한 날'이지만 가장 위로받아야 할 저임금 일용직 근로자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이날이 가장 쓰라린 날이 되고 있다.

고용사정이 악화되면서 일용직 근로자들은 급증했지만 장기간에 걸친 건설경기 침체로 하루짜리 일자리마저 크게 줄었다.

특히 최근 세월호 참사로 경기가 돌연 급랭하면서 일용직 고용시장이 더욱 얼어붙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최근의 경기 상황은 치명적인 셈이다.

이날 서울의 대표적 새벽 인력시장인 남구로역과 건설전문인력들이 모이는 양천구 신정사거리 부근 인력시장에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로 새벽부터 북적였다. 300명 남짓한 근로자들이 모여들었지만 평소보다 일자리가 크게 줄어 실제 일감을 얻는 행운아(?)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수십년째 양천 인력시장 부근에 살며 현장 일을 하고 있는 한 근로자는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들인데 이렇게 공치는 날은 하루가 아주 막막하다"며 근로자의 날을 오히려 원망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경기가 호전되고 있다지만 이날 현장에서 느낀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새벽공기처럼 싸늘했다. 일자리가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충남 안면도 건설현장까지 일을 나간다는 한 근로자는 "건설경기가 좋아졌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근로자의 날이라서 인부를 쓰지 않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나왔다고 씁쓸해했다.

그래도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이유에 대해 또 다른 근로자는 "팀장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어야 선택받는 확률이 높아진다"며 "결국 일자리도 인맥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고 허탈해했다.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이모씨도 "새로 오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며 "숙련공들도 일자리가 없어 죽겠는데 누가 초보들에게 일거리를 주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임금 일용직 근로자들에겐 가뜩이나 줄어든 일자리마저 앗아가는 근로자의 날이 원망스러운 하루일 뿐이었다. "비참해. 이렇게 돌아가면 처자식에게 볼 낯짝이 없지…." 하루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서는 한 일용직 근로자의 그늘은 이날 유난히 짙어 보였다.

lionking@fnnews.com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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