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아닌 역사 속 정조에 충실했다”
현빈이 그의 복귀만을 고대하던 팬들에게 멋진 왕이 되어 돌아왔다. 그간 아름다운 여배우들과 달달한 로맨스를 펼쳤던 그가 영화 ‘역린’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정조로 분해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채운 것.
최근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타엔과의 인터뷰에서 만난 현빈은 ‘역린’의 명대사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는 중용 23장 구절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최선을 다했다며 복귀에 대해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 현빈표 정조..“왕보다는 인간 이산을 표현”
‘역린’에 앞서 드라마 ‘한중록’, ‘한성별곡 정’, ‘이산’,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 등 정조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꽤 많았다. 이에 현빈이 ‘역린’에서 그려낼 정조는 어떨지 관심이 쏠렸다. 많은 작품들을 참고로 할 법도 한데 현빈은 일부러 피했단다.
“정조가 왕으로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보다는 시나리오와 감독님의 의도대로 인간 이산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 다른 작품들 속 정조를 본 적은 없다. 그러다보니 비교대상이 없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데 조금 더 수월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현빈표 정조’는 기존 정조들과 달리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서 고뇌하고, 또 그 고뇌 과정에서 처절히 외롭다. 이처럼 절제하고 또 절제하다 보니 왕의 노여움이라는 의미의 제목인 ‘역린’이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도 없지 않아 있었다.
“서적들과 KBS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를 참고했다. 워낙 절제력이 강한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절제라는 게 연기할 때는 힘들더라. 80을 감추고 20을 표현했을 때 보시는 분들에게 20이 전달될지, 아예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전달될지 알 수 없는 거니 대사 처리 등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럼에도 수염, 상투로 인한 제약도 있었다. 하관 근육이나 미간 주름으로 제약이 되다 보니 감정이 작게 나타날 수도 있고 크게 나타날 수도 있더라. 최대한 보여주려는 부분들을 많이 활용하려고 했다.”
이러한 제약에서도 ‘역린’이 가장 도드라진 장면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현빈은 “정조가 상책(정재영 분)을 내보내는 장면이지 않을까. 촬영할 때도 참 많은 감정들이 있었다. 나의 모든 것들을 알고 있고, 서열상은 한참 밑이지만 그 모든 걸 뛰어넘을 만큼 가까운 사람을 내보내야만 할 때 심정이 얼마나 복합적이었을까 싶다”고 전했다.
또한 개봉 전부터 세간의 화제가 된 ‘화난 등근육’에 대해서는 “눈요깃거리로 비칠까봐, 그리고 조선시대 왕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만 같은 편견이 있어 반대했다. 그런데 매일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점차 들었다. 현빈의 등이 아닌 정조의 삶으로 보여졌으면 해서 운동 담당하는 분에게 ‘근육이 삐뚤삐뚤하고 몸이 안 예뻐도 되니깐 그 당시 했을 만한 운동을 찾아달라’라고 부탁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무엇보다 현빈은 표현적 한계에서도 자신의 것처럼 보이려고 고민하는 노력파 배우답게 “정조가 문무에 능하다는 말에 실제로 말을 타는 분들이 봤을 때도 어색하지 않도록 2달 정도 승마 연습을 했다. 기록에 따르면 활도 어느 누구도 못따라갈 실력이었다. 이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 같아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검술까지 준비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도 같이 공존했다”고 회상해 ‘현빈표 정조’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님을 짐작케 했다.
◇ 보기도 전에 혹평..“공연장 같은 무대인사 열기가 힘돼”
세월호 참사로 인해 ‘역린’ 언론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가 취소되면서 배우들은 예정과 달리 언론 시사회 당일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언론의 ‘역린’을 향한 혹평이 쏟아졌다.
“개인의 취향이 있으니 평이 안 좋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안타까움은 있었다. 모두가 ‘역린’에 미쳐서 작업을 했었다. 감독님은 처음 뵐 때 푹 빠져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당연히 좋은 이야기가 나오길 바랐다. 게다가 영화를 보지도 못하고 혹평의 기사들이 나오니 준비 과정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어떤 문제가 생겼나 싶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혹평의 원인을 생각해봤다던 현빈은 “정조의 영화로 알고 있다 정조의 영화가 아닌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신 거 같다. 그렇지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정유역변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재영 선배님 캐릭터도, 조정석 씨 캐릭터도 탐났던 거다. 분명한 건 재밌고, 재미없고를 떠나서 우리 영화는 좋은 영화고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만족한다”고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속상할 수밖에 없던 현빈에게 5월 황금연휴 동안의 무대인사는 큰 힘이 됐단다.
“100회 이상의 무대인사를 다니면서 3만명 이상의 관객들을 직접 만났다. 조정석 씨, 한지민 씨, 박성웅 선배님 등의 팬들과 관객들이 결합이 되니깐 영화관 무대인사라기보다 공연장에 온 느낌이었다. 하루에 20회 넘게 무대인사를 다닌 날은 지칠만 한데도 뜨거운 반응에 힘을 얻었다. 영화에 대해 처음 안 좋았던 평과 달리 현장에서는 ‘이렇게 좋게 보는 분들도 있구나’ 싶어서 기분 좋았다.”
뿐만 아니라 현빈은 촬영현장에 대해서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생각보다 함께한 경우가 많이 없었다. 한지민 씨는 3번, 김성령 선배님은 2~3번, 조재현 선배님은 1번 본 게 다였다. 정재영 선배님과 박성웅 선배님을 그나마 자주 본 편인데 카메라 안에서든, 밖에서든 편하게 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어떻게 보면 후배로서 내 몫을 두 선배님이 대신 해주신 거다. ‘나도 언제쯤 내 후배들한테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감사했다”고 존경심을 표했다.
◇ 애프터 군생활..“연기 비롯해 다양한 경험하고 싶어”
현빈은 지난 2011년 3월 해병대로 입대, 2012년 12월 21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군 생활이 배우로서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을 터.
“워낙 어린 친구들이랑 있다보니 젊은 기를 받지 않았을까. 하하. 8~9살 어린 친구들과 2년을 같이 보낸다는 건 그때 아니면 평생 있을 수 없는 시간이지 않는가. 연기력으로 바로 나타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에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도움이 된 듯하다. 보시는 분들이 2년 동안 ‘현빈이 뭔가 달라졌구나’ 싶으시면 그 시간을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빈은 전역 당시 ‘연기를 하고 싶었던’ 마음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려 화제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에 그는 쑥스러운 듯 보조개가 움푹 들어간 미소를 짓더니 “연기가 좋아서 시작했고, 내 직업이 됐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지내보니깐 어느 순간부터 좋아서 하기보다는 일이니깐 하는 순간들이 점점 생겼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예 못하는 상황이 되니깐 갈증이 심해졌다. ‘역린’ 촬영장을 갔을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 20대 때도 365일 연기를 고민하고, 촬영장에만 있었던 건 아님에도 앞만 보고 달려 추억이 크게 없더라. 30대 때도 정신없이 달리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졌다”고 달라진 마음가짐에 대해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현빈은 ‘역린’을 이미 본 관객들이나, 보지 않은 관객들이나 이 메시지 하나만은 새기면 좋겠단다.
“‘정성을 다해서 하나씩 하면 세상은 분명히 바뀐다’라는 중용 23장 구절이 우리 영화의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쉬운 말 같으면서도 어려운 말이다.
나도 생활하면서 지치고, 짜증나고, 힘들 때가 있는데 문득문득 이 메시지를 생각하면 그 순간 잠깐이더라도 힘이 생기더라. 조금만 더 정성스럽게 잘하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다르게 느껴지게 할 수 있다. 이 문구 자체는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다.”
한편 ‘역린’은 정조 즉위 1년, 왕의 암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과 역사 속에 감춰졌던 숨막히는 24시간을 그린 작품으로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하츠’ 등 웰메이드 드라마를 탄생시킨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image@starnnews.com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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