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에서 선수들이 많은 것을 배웠다. 1회전에서 경기고에 패해 탈락했지만 오히려 약이 됐다. 우쭐한 마음이 사라졌고 이후부터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훈련에 집중했다."
지난주 열린 제68회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서울고 김병효 감독(47·사진)의 야구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가. 우승이 결정되자 야구장에서 왈칵 눈물부터 쏟아냈다. 김 감독뿐만 아니라 역대 서울고 야구후원회 회장들도 부둥켜 안고 함께 울었다. 명문고에 막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늘 들어오면서도 지난 29년간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서울고. 모교를 정상에 올려놓으며 '우승 감독'이라는 영예로운 훈장을 가슴에 달게 된 김 감독이나 오매불망 우승을 기다려온 후원회 회장들에게 지난 세월은 숱한 상처를 가슴에 남겨주었다.
"2007년 대통령배에서 준우승을 하고 난 후 감독에서 물러났을 때 가장 힘들었다. 이후 속초로 내려가 냉동창고에서 막노동을 했는데 얼마나 야구장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다시는 야구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나를 괴롭혔다."
김 감독은 1년 8개월여의 낭인 생활을 거쳐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감독이 아닌 코치였다. 감독에서 코치로의 강등은 남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지만 야구장 흙을 다시 밟게 된 것만으로도 김 감독은 기뻤다. "펑고를 쳐주고 야구장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선수들과 뒹굴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하는 운명을 절감했다. 코치, 감독 같은 자리의 의미보다 야구 자체가 즐거웠다."
열심히 하다 보니 기회는 저절로 주어졌다. 서울고는 이례적으로 김 감독에게 다시 팀을 맡겼다. 최원태, 박윤철, 홍승우, 남경호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김 감독의 품으로 속속 들어왔다. 김 감독은 이들과 함께 죽어라고 뛰었다. 서울고가 고교야구 최강 전력이라는 소문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 묵묵히 뒤를 받쳐 준 코치들도 감사하다.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승의 공신은 선수들과 코치들이다." 서울고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에이스 최원호가 뇌진탕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주장 겸 2루수 박형석은 햄스트링, 김우성은 급체로 고생했다. 1번타자 홍승우는 손가락 골절 상태에서 출전을 강행했다. 0-1로 뒤진 2회 1사 만루에서 싹쓸이 3루타를 날린 홍승우는 대회를 마친 후 비로소 병원을 찾았다.
김병효 감독은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건국대를 졸업한 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스스로 모교를 찾아와 코치를 자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고의 우승 한을 풀었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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