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박범신/문학동네
소소한 풍경/박범신/자음과 모음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이 돌아왔다. 논산의 자택에서 줄곧 칩거하며 일년에 한 번 꼴로 책을 내며 정열적으로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는 어느덧 일흔에 다다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젊고 에너지가 넘친다. 해를 거듭할수록 잘 다듬어져 보석같고 깊은 울림이 있는 문장을 선보이는 박범신. 이번엔 사랑이다. 인간과 인간을 잇는 깊은 감정의 고리 '사랑'을 소재로 한 두 번째 작품이다. 사람이라면 늙거나 젊거나, 혹은 밉거나 잘났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가슴 설레는 사랑은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지만 박범신의 작품 속 사랑은 어쩐지 특별하다.
'은교'의 사랑은 말할 수 없는 사랑이다.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위대한 노시인 이적요.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삶에 뛰어들어온 17세 소녀 은교를 사랑하게 된다. 단순한 연민, 설렘이라기고 하기엔 묘한 구석이 있다. 은교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늙음과 대비되는 젊음이었고 관능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적요에게는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제자, 서지우가 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사제지간으로 보이는 이 둘의 관계는 은교의 등장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은교를 보는 이적요의 눈빛이 심상찮음을 느낀 서지우는 은교에게 집착하고, 은교와 서지우의 관계를 보게 된 이적요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이들에게 이것은 과연 사랑이었을까. 삼각관계 연애소설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속 사랑은 '갈망'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서지우는 자신이 절대 넘어서지 못할 존재, 이적요에 대한 존경과 질투, 그리고 애증이 가득했고 이적요는 자신이 지나 보낸 젊음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은교는 이 둘의 욕망과 갈망에 치인 제3자였을지도 모른다. 인간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리고 예술로 승화된 사랑이야기다.
또 다른 사랑이야기 '소소한 풍경'의 사랑도 다소 복잡하다. 이름없이 ㄱ 과 ㄴ 그리고 ㄷ 으로 명명되는 세 명 주인공의 생물학적 성별은 각각 여자와 남자 그리고 여자. 이 소설에서 이들의 생물학적 성별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한번 더 강조되는 이유는 그 '중요하지 않음'에 방점을 찍기 위해서다. ㄱ 은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남자와도 헤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인 소소시로 내려온다. ㄱ 은 떠돌이 남자인 ㄴ 을 만났고 갈 곳 없던 ㄴ 에게 그녀의 보금자리를 내어준다. 그렇게 '홀로'였던 둘은 '함께'임을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의 이층집 앞에 갈 곳을 잃은 탈북여성 ㄷ 이 나타난다.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세 개의 삶이 이윽고 하나로 합쳐지고 이 곳에서 소외되는 이는 아무도 없이 서로 사랑하며 살기 시작한다. 셋이 하는 사랑이지만 삼각관계가 아니다. 이들의 사랑은 서로를 향하고 시작과 끝이 원처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작가 박범신은 이 이야기가 다자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1대1이 아닌 사랑은 여전히 비윤리적인 세상이지만 작가는 사랑을 다자간 관계 속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관념의 사랑을 만들어낸다. 이것 역시 사랑이라고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유일의 한 사람만을 향해야만 진짜 사랑일까? 저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한 통념에 대해 우리에게 되묻는다.
박범신의 손끝에서 창조된 두 종류의 사랑을 봤다. '은교'에서는 갈망하는 사랑을, '소소한 풍경'에서는 다자간의 사랑이다. 두 가지 모두 독특한 스토리와 전개로 범상치 않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만큼은 자명하다.
세상엔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며 이 모든 사랑은 개인이 쏟은 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누구도 이것을 지탄하거나 폄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죽고 못사는 사랑의 힘이다.
인터파크 이유진 문학인문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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