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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의 원스어폰어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학전 ‘의형제’가 더 나았다

[최진숙의 원스어폰어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학전 ‘의형제’가 더 나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쌍둥이가 태어난다.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졌지만 알뜰하게 살림 사는 데 소질이 없었고, 더더욱 못하는 건 가족계획이었던 여인이 쌍둥이 엄마다. 자식을 줄줄이 사탕으로 낳는 사이 남편은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다. 쌍둥이를 끝으로 남편은 집을 나간다. 이웃 부잣집 식모살이에 나선 여자는 그래도 낙천적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잣집 안주인은 여자의 쌍둥이 중 한 명을 입양한다. 가난이 낳은 운명의 장난은 이때부터다.

발랄하지만 궁핍한 생모 존스턴 부인 밑에서 자란 미키,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성장한 에디. 둘은 우연히 만나 엄마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의형제를 맺는다. 성인이 된 에디는 엘리트 대학생을 거쳐 시의원으로, 미키는 단순 노무자와 실업자를 거쳐 누명 쓴 죄수로 변모한다. 둘의 계급 격차를 명확히 인지하는 쪽은 미키다. 여러 애매한 정황 끝에 미키는 에디를 향해 총을 겨눈다. 왜 내가 아니었단 말인가. 나도 너처럼 될 수 있었는데. 미키의 절규 위로 비극의 종말이 쌍둥이를 덮친다.

'리타 길들이기'로 유명한 영국 극작가 윌리 러셀의 대표작을 토대로 한 이 뮤지컬은 1983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다. 국내에선 극단 학전이 1960∼70년대 한국 상황으로 이야기를 각색해 '의형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뮤지컬을 올린 적이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블러드 브라더스'는 영국 원작을 그대로 따랐다.

개막 첫날 공연을 보니 무대는 에디 역 조정석(사진)의 동선에 집중돼 있었다. 사실 극은 일곱 살 에디 조정석이 등장하는 1막 중간부터 활기를 띤다. 그전까진 지루함이 도처에 널려 있다. 1막 후반 교복 입은 학생 조정석이 걸어나올 땐 함성도 터진다.

3년 만에 뮤지컬로 돌아온 조정석의 녹슬지 않은 실력을 확인하는 즐거움은 제법 컸다. 하지만 뮤지컬은 그 이상을 보여주진 못했다.

첨예한 계급갈등을 고발한 원작의 매력은 온데간데없고 고전적인 재료들만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파국을 향해 내달리는 어둡고 익숙한 전개를 의식한 탓인지 대사 곳곳에 유머를 섞어 웃음을 공략했지만, 패가 다 보이는 밋밋한 작전으로 보였다. 없어도 하등 문제가 안될 장면·대사들은 수두룩했던 반면, 어지러운 무대를 극복해낼 넘버는 찾기 힘들었다.
주·조연 배우들이 주는 만족감의 편차도 꽤 있었다. 못살았던 우리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향수에라도 젖게 했던 학전의 '의형제'가 차라리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조정석의 개인기만으로도 만족할 자신이 있는 사람에겐 권해볼 수 있는, 딱 그 정도다. 공연은 9월 14일까지.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