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빙 'Book from the ground'(9월 28일까지 서울 왕십리로 더페이지 갤러리)
알 듯 모를 듯한 이 암호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오는 9월 28일까지 서울 왕십리로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리는 '노 모어 아트(No More Art)'전에 내걸린 중국 작가 쉬빙(59)의 작품은 '현대판 상형문자'라고 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통해 현대사회에서의 언어와 소통의 문제를 제시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쉬빙의 작품 첫 부분은 이런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아침 7시, 알람이 귀를 울리지만 꿈결 사이로 스며드는 빗줄기 소리에 눈을 다시 지그시 감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긴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잠이 깬 고양이가 이불 속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작가가 캔버스 위에 촘촘히 그려넣은 이모티콘을 따라가며 의미를 따지다보면 나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터져나온다.
한자(漢字)를 바탕으로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 문자를 만들어 'Book from the sky(天書)'라고 명명하기도 했던 쉬빙은 이번 작업에 그 반대 개념인 'Book from the ground(地書)'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존의 문자를 닮았지만 전혀 해석할 수 없는 '천서'와 달리 '지서'는 동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독특한 방식으로 근·현대미술을 체험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서체예술의 신기원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쉬빙 외에도 백남준, 샘 프란시스, 데미안 허스트, 리처드 페티본, 르 코르뷔지에 등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출품돼 흥미롭다. (02)3447-0049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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