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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전문기자의 핀치히터] 동양의 데릭 지터, 박효준이 해낼까

봄기운이 무르익은 5월 어느 날이었다. 휴스턴 아스트로스 구단은 한 선수에게 방출을 통보했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 첫째 다 때려치우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둘째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와신상담 기회를 엿본다. 그의 선택은 두번째였다.

하지만 그해 가을 그는 결국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 야구의 자존심이 처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일본 야구가 손꼽은 '20세기 최고 유격수'(일본 슈칸 베이스볼 선정)였다. 1998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 2002년엔 3할·30홈런·30도루의 대기록도 세웠다. 야구선수에게 요구되는 5가지 기능(five tool)을 완벽하게 갖춘 유격수.

일본은 2004년 이 최신형 무기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노모 히데오(투수·전 LA 다저스)와 스즈키 이치로(외야수·뉴욕 양키스)에 이어 유격수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첫 동양인 선수가 되길 바라며. 2루수로 자리를 옮기면서까지 메이저리그 적응을 위해 노력한 그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데 실패했다. 메이저리그 마지막 해 그의 타율은 1할4푼1리. 마쓰이 가즈오(39)는 현재 라쿠텐에서 뛰고 있다.

고교야구 최고 유격수 박효준(18·야탑고)이 지난 3일 116만달러(약 11억7000만원)에 뉴욕 양키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양키스는 그를 은퇴하는 '전설' 데릭 지터(40)의 뒤를 잇는 유격수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뉴욕 양키스의 주전 유격수, 꿈 같은 얘기다. 하지만 앞길은 험산준령이다. 마쓰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계 유격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 격하게 말하면 제로(0)에 가깝다. 아직 성공한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20세기를 통틀어 일본 최고 유격수라던 마쓰이조차 끝내 바늘귀를 통과하지 못했다.

박효준에 앞서 그 길에 도전한 선수는 또 있다. 충암고 시절 대형 유격수로 주목받던 이학주(24·탬파베이 트리플 A)다. 아쉽게도 이학주는 4년째 마이너리그를 맴돌고 있다. 지난해 무릎 부상을 당하자 구단은 주전 유격수 유넬 에스코바와 계약 연장을 결정했다. 기다림의 길이는 마음 따로 현실 따로다.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효준은 데릭 지터의 후계자로 지목될 만큼 뛰어나다. 184㎝, 76㎏의 좋은 체격 조건에 유격수의 필수 조건인 스피드와 유연성이라는 두 개의 칼날을 겸비했다. 올해 공식 경기에서 54타수 18안타(0.439) 4홈런을 기록할 만큼 타격도 매섭다.

지난 5월 황금사자기 대회 대전고와의 경기에서는 역전 만루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미국의 야구전문 잡지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박효준을 해외 유망주 18위로 손꼽았고 메이저리그 공식 사이트 MLB.com은 13위에 올려놓았다.

박효준을 오래 지켜본 유격수 출신 정영기 한화 스카우트 팀장(전 MBC 청룡)은 "보기 드물게 좋은 자질을 갖췄다. 수비동작이 부드럽고 스피드와 타격까지 겸비했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특급선수라야 만족하는 양키스라는 정글도 반드시 불리한 조건만은 아니다. 양키스는 남미 출신 '제2, 제3의 박효준'과 재보험을 들었다. 우선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경쟁은 어딜 가나 존재한다. 느슨함보다는 절박함이 오히려 생존 본능을 부추긴다. 10년 전 추신수(32)의 사정은 더 험난했다. 2000년대 초반 시애틀의 외야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 스즈키 이치로, 랜디 윈이 버티고 있었다.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진용이었다.

추신수는 2006년 클리블랜드로 이적되면서 활로를 찾았다.
주머니 속 송곳은 튀어나오려는 본능을 지녔다. 날카로움만 잊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조금씩 성장하며 오래 기다리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texan50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