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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의 원스어폰어뮤지컬] 드라큘라

[최진숙의 원스어폰어뮤지컬] 드라큘라
드라큘라 역의 김준수(왼쪽)와 미나 역의 정선아

핏빛 십자가가 부서지는 영상이 사라지면, 무대는 트란실바니아의 음침한 드라큘라성을 찾아 돌고 돈다. "환영합니다, 원하신다면 들어오시죠." 이 첫 대사를 내뱉는 드라큘라도 문 앞 남자와의 만남이 자신에게 뭘 가져다줄지 알지 못한다.

런던의 변호사 조나단 하커의 방문, 뒤이은 그녀의 약혼녀 미나 머레이의 도착. 창백한 얼굴의 백발 노인 드라큘라는 미나에게서 400년 전 목숨 바쳐 사랑했던 여인 엘리자벳을 본다. 미나를 얻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된 드라큘라는 조나단의 피를 먹고 청춘으로 돌아온다. 이 변신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곡이 '신선한 피(fresh blood)'다.

드라큘라의 미나 정복기, 뱀파이어 천적 반 헬싱 교수의 추격전, 드라큘라와 미나의 애절한 교신 등은 여러 겹으로 포개진 무대 회전장치를 따라 속도감 넘쳤다. 배우들은 이 회전판을 걸으며 직접 장면을 전환시켰다.

드라큘라 캐릭터는 사랑에 목숨 건 마력의 흡혈귀 정도 되지만, 유머 감각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었다. 드라큘라 김준수가 열차를 기다리는 미나 조정은을 만나 "당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리로 오는 모든 열차를 탈선시켰소" 같은 썰렁한 농담을 던질 때, 객석은 거의 초토화됐다.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동명 원작(1897년)을 토대로 프랭크 와일드혼(작곡)·데이비드 스완(연출)·신춘수(프로듀서) 등 '지킬 앤 하이드' 제작팀이 만든 뮤지컬 '드라큘라'가 막을 올렸다. 해외에선 2001년 초연됐고, 국내에선 이번이 첫 공연이다.

무대가 정점에 도달하는 지점은 미나의 침실에서 벌어지는 드라큘라와 반 헬싱 교수팀의 싸움 장면을 꼽고 싶다. 미나의 마음을 얻었다고 확신하는 드라큘라가 반 헬싱 교수팀을 제압하기 직전 벌이는 노래, 연기 대결이 객석의 몰입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드라큘라가 "패배자는 너야. 넌 날 못이긴다"며 부르는 '이제 끝났어(It's over)'의 위력은 기대 이상 셌다. 류정한(드라큘라)-양준모(반 헬싱) 조합의 시너지가 특히 볼만했다.

주연 배우 둘의 무대 장악력을 고려해볼 때 드라큘라의 독주로 도배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지만, 반 헬싱·미나·조나단의 존재감도 만만찮았다. 양준모, 조정은, 정선아(미나), 카이(조나단) 등으로 이어지는 주·조연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안심하고 봐도 된다.
전체적으로 '지킬 앤 하이드'보다 강해진 호러 오락 뮤지컬인 듯싶다.

다만 드라마가 물흐르듯 자연스럽지 않았던 건 아쉬운 점이다. 정점을 찍고 마지막 비극을 향해 치닫는 과정은 다소 급작스럽기까지 했다. 천천히 슬픔을 음미하며 드라큘라의 종말을 배웅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공연은 오는 9월 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