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만든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Rules of Engagement·교전수칙, 2000년)'는 군인이 전투 중에 한 행위의 책임 한계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다. 예멘 군중 소요 속에서 대사관 사수 임무를 맡은 미 해병특공대가 민간인 80여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특공대장은 저격수의 총탄에 부하대원이 쓰러지자 본능적으로 대응사격을 명령했다. 그는 귀국 후 곧바로 군 법정에 서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민간인을 살해해서는 안 된다'는 교전수칙을 어겼다는 혐의다.
치열한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마침내 진실이 드러난다. 중동과의 관계 악화를 두려워한 미국 정부가 특공대장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하고 그에게 유리한 증거를 모두 인멸하기까지 한 것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식 영웅주의가 넘쳐흐른 탓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다만 전투 상황에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군인에게 과연 누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동부전선 일반전초(GOP)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 검거 과정에서 아군 간 오인사격과 관련해 장병 7명이 형사입건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혐의는 어이없게도 일반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상'이라 한다. 군 형법에는 '업무상 과실치상'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군 내부가 벌집 쑤셔 놓은 분위기인 모양이다. 이쯤 되면 프리드킨의 영화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총기 난사사건에 대한 미숙한 대응으로 온갖 비난을 받은 군으로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던 걸까.
우리 군 교전수칙에 '오인사격은 절대 안 된다'고 되어 있다는 말인가. 물론 오인사격은 절대 있어서 안 되며 군에서도 이를 막기 위해 항상 군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무장탈영병 검거작전은 긴박한 실전 상황이다. 먼저 쏘지 않으면 내가 맞아 죽을 수 있는 전투에서 오인사격은 언제든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단죄하다니 만화 같은 일이다. 앞으로 전투가 벌어지면 어느 장병이 앞장서겠으며, 지휘관이 사격 명령을 제대로 내릴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군의 사기와 전투력이 땅에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군은 "형사입건이 곧 처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공 처리나 국가 보상을 위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럴 거면 조용히 내사를 통해 처리하면 됐을 일이다. 목숨을 걸고 전투 임무를 수행한 장병들을 이렇게 대우하는 군은 없다. 이래서야 군의 기강이 설 수 있겠나.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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