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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일본의 약탈 문화재

"자료기증 약속 이후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람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어 참 행복했다. 지금도 한국에서 추사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해 자료 기증에 더욱 큰 보람을 느낀다."('추사 자료의 귀향' 중 후지쓰카 아키나오 병상 인터뷰 )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돈 한푼 받지 않고 한국에 돌려준 아버지(후지쓰카 지카시)에 이어 추사 유묵과 수많은 문집, 사료를 조건 없이 과천문화원에 기증한 후지쓰카 아키나오(1912~2006년) 부자의 결단은 더없이 감동적이며 기품 넘치는 선행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소중히 여기는 문화재라 해도 그 고국에서 더 값지고 빛나는 유산으로 존중받는 것이라면 내려놓을 수 있다는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키나오씨에게 우리 정부가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고 공로를 기렸지만 이들 부자가 한국의 문화·학술계에서도 널리 존경받는 것은 고귀한 문화재 사랑과 결단이 다른 이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아서다.

외침(外侵)과 전란(戰亂)의 역사가 되풀이된 탓에 우리 문화재는 약탈 및 파괴의 아픔을 유독 많이 겪었다. 임진왜란과 식민지배로 우리 땅을 짓밟은 일본은 문화재 약탈에 어느 나라보다 열을 올리며 마음껏 욕심을 채웠다. 한국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일본에 현재 6만6824점의 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정도다. 도자기, 불상은 물론 석탑, 비석, 도서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이웃의 문화 유산을 닥치는 대로 삼킨 결과다.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의 한반도 반출 문화재 목록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반환 요구를 우려해 이를 장기간 은폐한 것으로 확인됐다. 1965년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문화재를 선별, 한국이 요구한 반환 대상 품목의 32% 정도인 1431점만 반환하고 귀중 문화재는 빼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술 더 떠 문서를 공개할 경우 국익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일본 정부가 발뺌하자 도쿄 고등법원은 최근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행정, 사법부가 한통속임을 보여주는 행태다.

약탈 문화재는 우리 문화재청이 "외교부와 협의해 환수 관련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혀 한·일 마찰의 새 불씨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문화재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준 후지쓰카 부자가 살아 있었다면 오늘의 일본 정부에 어떤 말을 들려주었을지 궁금하다. 강제로 삼켰다가 억지로 내놓은 독도를 아직 자국영토라고 우겨댈 만큼 뻔뻔스러운 일본 정치인들의 귀에는 진실의 소리가 들릴 리 없겠지만.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