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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인도에 발목잡힌 세계무역기구(WTO)

[fn논단] 인도에 발목잡힌 세계무역기구(WTO)

지난 5월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친기업적인 정책을 표방했다.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각종 규제 완화책을 발표했고 중국 및 앙숙인 파키스탄과의 관계개선에도 적극 나서 지정학적인 리스크도 줄이려 했다. 그러나 모디 총리의 이런 정책은 그가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원활화협정(TFA)을 거부해 진실성이 의심받고 있다. WTO 회원국들은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무역원활화, 농업보조금 축소, 최빈국 지원 확대 등 3개 부문에 걸쳐 모두 10개 조항에 합의했다. 통관절차를 간소화하고 세관협력을 강화해 무역을 촉진하자는 게 무역원활화다. 이 협정은 지난달 31일까지 회원국들이 서명을 마쳐야 했지만 인도 정부가 자국의 식품보조금을 위협한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인도가 이 협정을 거부해 발리 합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는 8억명의 빈민들에게 식품보조금을 주고 농민들을 위해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사준다. WTO 규정에 따르면 무역을 왜곡하는 이런 식품보조금이 전체 수확량의 10%를 넘으면 회원국들의 제소를 당하게 된다. 인도의 식품보조금은 이를 초과한다. 지난해 발리에서 WTO는 인도의 총선을 의식해 4년간 인도의 식품보조금을 이 규정에서 면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모디 총리는 2017년이 지나면 이런 일시 면제 조항이 아무런 효력이 없어 자국의 식품보조금 정책을 실행할 수 없다며 WTO 합의를 거부했다. WTO는 무역을 왜곡하는 식품보조금 대신에 빈민들에게 현금이나 식권 제공을 허용한다.

브라질의 WTO 대사 출신인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지난해 9월 취임했다. 브릭스(BRICS) 출신의 첫 사무총장인 그는 2001년부터 시작된 WTO 체제의 첫 다자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를 되살리기 위해 발리 합의를 이끌어 냈다. 지난해 발리 합의는 DDA 여러 협상 분야 가운데 타협이 가능한 3개 분야를 끄집어 냈고 회원국들은 발리 합의 이행 후 올해 안에 DDA 협상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DDA는 미국과 브릭스, 유럽연합 간의 농업보조금 감축 등의 이견 때문에 2006년 교착 상태에 빠졌고 그동안 몇 차례 이를 타개하기 위한 협상이 있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2008년 후반기 미국발 경제위기가 유럽 등 세계 각국에 전이되면서 세계 무역도 움츠러들었다. WTO의 자료를 보면 경제위기 이전 1980년부터 30년간 세계 무역 증가율은 세계 경제성장률의 2배 정도였다. 세계 무역이 경제 성장을 이끈 원동력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경제위기가 확산되면서 역전됐다. 2012년과 2013년 세계 무역은 각각 2%, 2.5% 성장에 그친 반면 같은 기간 세계 경제성장률은 2.9%를 기록했다. 경제위기 이전을 감안한다면 세계 무역이 최소한 5% 정도는 성장해야 한다.


우리는 내년부터 외국 쌀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 정부는 쌀 농가 보호대책을 마련했고 이게 최선의 정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관세화 유예 조치를 받은 지난 20년간 정부가 사회적 논의를 거쳐 다양한 대책을 준비했는가라는 일말의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