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이다해 기자】반짝이는 흰 갈기를 날리며 백마 두 마리가 무대로 달려 나온다. 정확히 무대 중앙에 멈춘 둘은 관객과 시선을 맞추더니 다음 동작을 의논하듯 얼굴을 마주대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막이 열리고 광활한 사막이 펼쳐지며 쇼가 시작된다. 말들은 따로 또 같이, 관객이 말에게 기대할 수 있는 이상의 움직임을 만든다. 우아한 자태로 걷다가 음악에 맞춰 리드미컬한 스텝을 밟는가 하면 무리지어 공전하다가 동시에 자전을 하더니 서로의 등에 얼굴을 포개며 사랑스런 모습을 연출한다. 여유롭게 걷다가 예고없이 질주할 때는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안겨준다.
50마리의 말과 33명의 배우가 교감하는 아트 서커스 '카발리아(Cavalia)'는 지난 2003년 캐나다 초연을 시작으로 미국, 독일, 벨기에 등 52개 도시를 다니며 4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서커스를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의 공동설립자 노만 라투렐이 총감독이다. 오는 11월 한국에 들어오는 이 공연을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중심에 세워진 '화이트 빅탑 시어터'에서 지난 24일 저녁 미리 만났다.
말과 사람이 완벽한 호흡으로 하나가 된 모습은 20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이에 호응하듯 말이 무대 밖으로 앞발을 내밀자 환호와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온 씨씨(Cici)씨는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 서커스를 본 적이 있지만 말이 주인공인 서커스는 처음이다. 말과 곡예사의 아찔한 묘기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며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카발리아는 말(馬)을 뜻하는 스페인어 카발루(cavalo)와 프랑스어 쉐발(cheval)을 조합해 만든 단어로 시작부터 끝까지 말이 주인공이다. 말들은 신통하게도 움직여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연기한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곡예사·기수)가 '쭙쭙' 같은 입소리로 가끔 신호를 주기도 하지만 음악을 듣고 움직임을 만드는 건 말들 자신이다. 그래서 안장이나 고삐없이 자유로운 상태로 연기하는 '리버티'에서는 말의 의지에 따라 미리 정해 놓은 안무를 하지 않기도 한다.
60m의 대형 와이드 스크린에 투영된 나무가 우거진 정글, 신비로운 동굴, 고풍스러운 성, 눈 내리는 설원을 배경으로 말과 배우들은 다채로운 마상 곡예를 선보인다. 검은 피부의 아크로바틱 팀이 발에 스프링 달린 듯 12회 연속 텀블링이나 4층 인간탑 쌓기로 흥을 돋우면 6마리의 흑마들이 넘실대는 근육을 자랑하며 무대를 휘젓는다. 여기에 공중곡예가 더해지고 하늘을 날던 곡예사가 관객의 눈앞까지 다가와 혼을 쏙 빼놓는다. 금발의 미녀가 금발의 말 위에서 한 발로 서거나 점프할 땐 누가 말이고 누가 인간인지 모를 지경. 배우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체조의 안마 동작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두 마리도 모자라 네 마리의 말을 한 번에 타고 달린다.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 첼로, 보컬로 이뤄진 6인조 밴드의 라이브 음악은 아찔한 묘기의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정적인 음악과 함께 말과 사람이 어우러져 춤추는 '드레사지'는 숨가쁜 호흡을 고른다.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여성 공중 곡예사와 남자 라이더(기수)가 관객들을 꿈 속으로 안내한다. 중력을 거스르는 곡예사와 그를 에스코트하는 말은 각각 요정과 유니콘을 연상시키며 동화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공연의 특성상 말들은 주연급 대우를 톡톡히 받는다. 이날 공개된 백스테이지 마구간에는 말 한 마리당 10㎡ 넓이의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공연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매일 마사지와 스트레칭을 받고 1시간씩 방목장에서 산책도 한다.
스페인, 호주, 캐나다 등 다양한 국적 출신의 말들은 모두 수컷이다. 암컷이 있으면 서로 경계할 수 있기 때문. 덕분에 끈끈한 형제애는 공연에서 빛을 발한다. 라이더와 말의 유대관계는 두말 하면 잔소리다. 말 한마리와 평균 4~5년간 함께 지낸 라이더들은 말과 대화하며 움직임만 보고도 토라졌는지 기분이 좋은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오는 11월 5일부터 12월 28일까지 국내에서 초연되는 '카발리아'는 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해 역대 투어 중 가장 큰 규모의 공연으로 꾸며진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에 2400㎡, 높이 30m, 무대 넓이 30m의 특설 공연장이 세워진다. 무대를 채울 모래와 자갈이 2500톤이며 사용되는 물의 양만 12만리터가 넘고 2시간 공연을 위해 배우들이 입는 옷은 350벌에 달한다. 5만~25만원. 158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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