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건 '호현낙선'(11월 5일부터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인서구노(人書俱老). 무릇 사람과 글은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어떤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고 했다. 당나라 서예가 손과정(648~703)이 쓴 '서보(書譜)'에 나오는 말이다.
올해 팔순을 맞은 원로 서예가 송천(松泉) 정하건의 '산수전(傘壽展)'이 오는 11월 5일부터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다. 노장의 예술혼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행서, 해서, 전서 등 송천의 원숙한 서예관이 고스란히 깃든 서예 작품 130여점이 출품된다.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호현낙선(好賢樂善)'은 송천이 올해 쓴 작품이다. 사상의학을 확립한 동무(東武) 이제마(1837~1900)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 나오는 '투현질능 천하지다병(妬賢嫉能 天下之多病), 호현낙선 천하지대약(好賢樂善 天下之大藥)'이라는 구절 중 네 글자를 따왔다. 천하에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시기하는 것보다 더한 악이 없고, 어질고 선한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더 큰 선은 없다는 뜻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 밖에도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은상의 '조국강산' 2700자를 화폭에 담은 대형 작품을 비롯해 '지고지순(至高至順)' '좌금우서(左琴右書)' 등 다양한 글씨체로 표현한 최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팔순의 나이에도 서실을 운영하며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있는 송천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 선수의 서예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의 시비와 묘비, 서울 견지동의 조계사 현판, 9000자에 이르는 조계사 사적비, 임경업 장군 묘역정화비문 등도 그의 작품이다.
송천은 이번 전시에 맞춰 자신의 서예 인생 80년을 담은 자전 대담집 '필묵도정(筆墨道程)'도 곧 펴낼 예정이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 (02)720-1161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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