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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 생각나는 밤] 이창욱 인터뷰 -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남기

[술 한 잔 생각나는 밤] 이창욱 인터뷰 -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남기


연기자.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타인의 삶을 그려내는 인물들을 칭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연기자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일명 ‘톱 배우’로 불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듯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 이창욱도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다. 그는 현재 방송 중인 KBS2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의 최상두를 비롯해 ‘골든 크로’ 제이슨, MBC ‘내 손을 잡아’ 정현수 등 꾸준하게 얼굴을 알리고 있다. 작품 전체에 있어 큰 비중은 아니지만, 그는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 모처에서 이창욱과 만남을 가졌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의 지난날을 되짚어봤다.
[술 한 잔 생각나는 밤] 이창욱 인터뷰 -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남기


# 배우의 꿈 ‘멋있게 보인다’. 대중들이 배우를 보고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화려한 삶. 이창욱도 그러한 매력에 빠졌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창욱에게 이러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릴 적 최민식 선배가 우상이었어요. 게다가 연예인들의 화려한 삶이 부러웠죠. 단순한 생각이었죠. 그렇게 시작한 배우 생활이지만, 지금 생각은 완전 다르죠. 그 어떤 전문직보다 전문적인 직업이라 생각해요. 이제는 그 전문성을 쌓아서 관계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공감과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직업으로서 제가 선택한 일이기에 인정받고 싶죠. 전문성을 쌓으려면 연기를 잘 해야 하고 그런 것들을 위해 저를 열심히 채워나가려 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출연하게 된 영화 ‘취화선’의 엑스트라. 우연히 거리에서 본 여고생으로 인해 그는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화구통을 매고 걸어가는 여고생을 봤어요. ‘저 친구는 한 가지 일을 선택해서 하는데 나는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뭔가 제 일을 선택하고 싶었죠. 그렇게 선택한 것이 배우의 길이죠. 물론 모델로서 활동할 기회가 먼저 왔지만, 배우의 꿈을 잊지 않았죠. 이후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좋은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워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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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아홉,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다

이창욱에게 스물아홉 살의 시기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가장 많은 고민을 했으며, 자신이 선택한 길에 회의감을 느끼던 시기였다. 20대의 마지막과 30대를 앞둔 모든 이들과 비슷한 시기이기도 했다.

“스물한 살에 모델로 데뷔해 1년 정도 활동하다 배우의 꿈을 키워왔어요. 나름대로 배우가 되고 싶어 열심히 노력 했는데, 막상 스물아홉 살이 되고 나니 ‘지금까지 뭘 했지’라는 벽에 부딪쳤어요. 소속사도 있었지만 1년에 한 작품 정도밖에 못했었거든요.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정말 공허하거든요. 시간은 많고 뭘 해야겠는지도 모르겠고 그야말로 텅 비어버린거죠. 열심히 달려왔는데 막상 그런 상태가 되니 회의감이 들었죠. ‘다른 걸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직업에 대한 회의감. 선택에 대한 후회. 이창욱은 우연히 들른 집 앞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통해 그러한 생각을 말끔히 털어냈다.

“주변에 잘 나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질투도 나고 시기하기도 했었죠. 밤에 잠이 안와 벌떡벌떡 일어나기도 했죠. 우울함이 찾아와 사람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스스로 갇혀 있는 시기였죠. 자다가 지쳐 집 앞 도서관에 가서 앉아있는데 우연히 법정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라는 책을 보게 됐어요. 스님의 유언에 따라 기증된 책이기 때문에 대여가 불가능해서 그 자리에서 조금씩 읽게 됐어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책을 다 읽으니까 왠지 영혼이 힐링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게 됐죠. 그래서 지금 회사도 만나게 되고 이후 좋은 일들을 많이 겪었죠. 혼자 삭히면서 얽매여 살았던 것 같아요.”

20대의 마지막이기에 더 조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대를 맞이한 그는 완전히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조급함을 덜어낸 편안한 상태라고 할까?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아닌 다가올 미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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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내 어머니

진로를 결정할 때 대다수가 부모님과 갈등을 겪는다. 고생길이 훤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을 추천해주고픈 부모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자식의 꿈을 존중해주고 뒷바라지 해준다는 것만큼 든든하고 힘이 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창욱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배우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했어요. 정말 감사했던 게 ‘너 하고 싶은 걸 해라’라고 하셨어요. 다른 배우 친구들을 보면 반대가 심해서 집에서 나온 경우도 많은데 저는 그게 없었죠. 감사하죠. 지금 ‘뻐꾸기 둥지’를 하면서 부모님이 가장 좋아해주셨죠. 드라마 같은 경우는 오늘 방송을 하면 내일 바로 사람들이 알아보잖아요. 특히 어머니가 좋아해 주실 때 배우 되기 잘 했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 제가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 덕분이죠. 그런 어머니한테 ‘아들 정말 잘 키웠다’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게 노력해야죠.”

때문에 그는 현장에서 더욱 치열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다. 비중이 많지 않기에 자신이 주어진 신에서 최대한을 보여야 했다.

“현장을 갈 때는 항상 ‘NG를 절대 내지 말자’고 다짐해요. 제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모습이 화면에 나오면 안 되잖아요. 한 번에 가려고 집중하고 긴장되지만 괜찮은 척 노력을 많이 했죠. 이번에도 ‘쟤는 잘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게다가 현장에 많은 분들이 계시잖아요. ‘뻐꾸기 둥지’ 종방연 때 한 스태프가 ‘형 있으면 (촬영)빨리 끝내고 갈 수 있었다’고 해주는데 뿌듯했었죠.”
[술 한 잔 생각나는 밤] 이창욱 인터뷰 -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남기


# 성악을 배우다

이창욱이 배우를 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얻은 것은 성악을 접한 것이었다. 혹자는 연기가 아닌 성악을 배워 어디에 쓰겠냐 하겠지만, 모든 것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그의 지론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연기의 본 고장인 러시아에서는 성악, 발레, 현대무용 발성 등 종합예술을 다 가르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이 없으니 개인적으로 배워보자는 생각을 했죠. 복학을 해서 부전공으로 성악을 배우고 무용을 배웠죠. 평소 목소리에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성악을 통해 복식호흡을 배우고 난 뒤 관계자들에게 목소리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복식호흡을 통해서 목소리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의 목소리를 찾게 된 거죠. 지금도 성악을 전공으로 배우고 있어요. 성악을 통해 목소리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연기에 있어서 정답은 없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배워서 그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악과 무용을 배운 거죠.”

이렇듯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의 길을 걷다가 끝내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도 있으며, 열정만 가지고 맨몸으로 치열한 생존경쟁 중인 사람들도 많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창욱은 부모님의 지지 아래 좋은 회사 식구들과 지인들을 만나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에요. 늦었다 생각하지 않고, 남보다 더 나은 삶에 감사해하며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서 정말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할게요.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도록 할게요.”

이창욱과 함께 꿈을 향해 걸어왔던 지난날을 이야기하던 얼마 전을 떠올리니, 문득 술 한 잔이 생각나는 밤이다.

/fn스타 fnstar@fnnews.com 조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