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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극영화보다 감동적인 '다큐영화'에 열광하다

연말 극장가에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흥행이 거세다.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는 100만 관객을 끌어모았고 호스피스 병동의 이야기를 담은 '목숨'은 개봉 11일만에 3만 관객의 발길을 잡았다. 유난히 이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한 해,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맨 얼굴'로 보여준 진정성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세밑, 극영화보다 감동적인 '다큐영화'에 열광하다
님아 76년 해로한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 전 연령대가 공감.. 개봉 3주만에 100만 관객 돌파


■100만 관객이 함께 울었다

1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님아'는 개봉 3주차를 맞은 지난 주말(12∼14일) 전국 801개 상영관에서 관객 63만7316명을 동원하며 누적관객 105만7432명을 기록,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다.

지난달 27일 개봉 당시 10위권 밖에 머물던 '님아'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꾸준한 추천과 입소문에 힘입어 순위가 급상승, 지난 11일 '인터스텔라' '엑소더스' 등 쟁쟁한 할리우드 대작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뜨거운 관객들의 성원으로 개봉 당시 194개에 머물던 상영관 수도 지난 14일에는 804개까지 확대됐다.

개봉 3주만에 100만 관객 돌파는 다큐멘터리 영화 최고 흥행 기록(293만명)을 가지고 있는 '워낭소리'보다 18일이나 빠른 기록이어서 향후 흥행 지속 여부에도 기대를 모으게 한다.

'님아'에는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나눠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다. 봄에는 서로의 머리에 꽃을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엔 낙엽을 던지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한다. 늘 서로의 얼굴을 매만지며 "예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가고 할머니는 76년을 해로한 남편을 떠나보낼 준비를 시작한다. "석 달만 더 살아요. 할아버지와 손을 마주 잡고 그렇게 같이 가면 얼마나 좋겠소"라고 애원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눈물이 쏟아진다.

호스피스 병동의 생활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목숨' 역시 조용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목숨'은 개봉 11일만인 15일 3만71명의 관객을 모으며 3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6일째인 지난 9일 2만 관객을 돌파한지 닷새 만에 1만 관객을 추가로 동원한 셈이다. 지난 4일 개봉한 목숨은 개봉 8일만인 지난 11일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진입하며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인 바 있다.

'목숨'은 남은 시간 평균 21일, 삶의 끝에서 잠시 머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들과, 세상과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40대 가장 박수명, 두 아들의 엄마 김정자, 수학 선생님 박진우 할아버지 등 실제 주인공들이 삶의 마지막을 진심으로 뜨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줘 감동을 더한다.

세밑, 극영화보다 감동적인 '다큐영화'에 열광하다
목숨 죽음 앞둔 환자들의 마지막 21일, 삶의 가치 일깨워.. 11일만에 3만 관객 '조용한 흥행'


■소박해도 찬란한 삶을 만나다

두 영화가 실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소중함'이다. 일상 속 소소한 가치들에 대한 소중함. 그 공감이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님아'의 진모영 감독은 "전 연령대에 걸쳐 영화 속 노부부가 보여주는 사랑에 큰 공감을 얻고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며 "특히 자신의 부모와 가족들에게 영화를 추천하고 함께 보러 오면서 점차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상처가 많았던 2014년을 통해 사람들이 진짜 중요한 가치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는 조심스런 분석도 나왔다.
시나리오가 만드는 화려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내 이야기'를 원한다는 얘기다.

'목숨'을 직접 기획하고 만든 이창재 감독은 "환자들의 마지막 21일간의 삶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만큼 작은 것에서 얻는 기쁨과 사랑, 행복도 컸다"며 "그들은 낫겠다는 희망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상이 더욱 큰 사람들이어서 그 절실함이 더 깊이 전달되는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영웅으로, 화려한 삶으로 비춰지던 사람들에 대한 실망도 컸던 한 해였고 그 때문에 영화관을 찾는 관객도 크게 줄어든 한 해였다"며 "사람들의 시선이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자신과 가족, 이웃처럼 소중한 가치들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