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측 눈치 보느라 역할 한계, 권한 늘리고 책임 함께 물어야
"대놓고 반대할 수도 없죠. 시장의 따가운 눈총도 있지만 회사 쪽 눈치를 안볼 수도 없고…."(A기업 사외이사)
"때론 이사회가 가시방석입니다. 솔직히 안건을 꼼꼼히 검토할 시간이 없습니다."(B금융사 사외이사)
'거수기' 사외이사가 여론의 도마에 다시 올랐다. 제도가 도입된 지 18년째지만 여전히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고, 힘 있는 관료들이 자리를 꿰차면서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포스코 등 일부 기업에 전직 국회의원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가 하면 기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관료 출신이나 법조계 출신 사외이사도 다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공정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의 거리를 두고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 재점화
지난 1998년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는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이사 외에 외부 전문가들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포함해 외부의 시선으로 기업 경영을 감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해 찬성 의견만을 내비치면서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49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사외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한 1만3284표 중 99.7%인 1만3243표가 찬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린 전직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총 15개 상장사에서 14명의 전직 국회의원이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이 중 조전혁 전 의원은 한국전력과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이사를 겸직했으며 김홍신 전 의원도 케이에스씨비와 조아제약의 사외이사를 맡았다.
20일 파이낸셜뉴스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 주주총회소집공고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지난해 열린 186회의 이사회 중 128회에 참석해 73.11%의 참석률을 보였다. 이들이 의견을 표시한 313건 중 반대표는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 상정안건 승인의 건에 대해 던진 한 표였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실장은 "현재 사외이사 제도는 책임도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 수준이어서 사외이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라며 "거수기 역할에만 그치는 사외이사의 권한을 늘리면서 책임을 함께 물리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의 지탄이 이어지자 선임이 예정된 전직 의원이 사외이사직을 고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 모 기업 사외이사로 확실시됐던 한 전직 의원은 "회장과 고교 동창으로 워낙 친분이 있고 이제 회장 본인은 경영에서 물러나는 입장이기에 제대로 쓴소리를 내줄 적임자라고 (나를) 추천했다"고 설명하면서 "선출직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허가가 필요없는 줄 알았는데 절차가 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맡을 직책은 아니라고 생각해 사양했다"고 말했다.
■무리한 책임론… 독립성 확보 시급
부패와의 전쟁을 계기로 사외이사 책임론까지 들추는 건 법적 책임의 한계를 넘어선 무리한 판단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령 부실기업으로 드러난 성진지오텍의 경우 사외이사가 회계법인의 경영진단에 대한 진위 파악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 등 민감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수희 변호사는 "사외이사에게 경영상 횡령, 배임을 제외하고 경영상의 판단에 대해서는 상법상 책임을 묻긴 어렵다"면서 "내부 사람보다는 견제 역할을 위해 사외이사를 넣는 게 낫겠다 싶어 명망 있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넣는 건데 고의 입증은 정말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해마다 되풀이되는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독립성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립기구로 규정된 사외이사가 외관상 독립성 확보에만 그치고 실질적으로는 기업 경영진에 종속돼 있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제도를 강화해 경영진과 독립된 사외이사진을 꾸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엄수진 연구원은 "최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도입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 중 대다수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법인에 한해 설치를 강제하면서 의무적으로 도입한 사례"라고 꼬집었다.
sane@fnnews.com 박세인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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