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단기전에선 질 것 같지 않았다. 1983년 해태는 코치 2명, 선수 15명으로 한국시리즈서 우승했다. 그나마 전년에 비해 한 명의 선수가 늘어났다. 누구도 해태의 우승을 예상하지 않았다. 해태의 신화는 척박한 땅에서 비롯됐다.
해태는 1986년부터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야구팬들은 김봉연, 김일권, 이상윤, 선동열, 이순철 같은 명선수를 떠올린다. 선수가 좋아야 이긴다. 당연한 논리다.
다음으로 호랑이 조련사 김응룡 감독의 용병술을 추억한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 부정할 수 없는 이치다. 하지만 해태의 기적은 감독과 선수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990년 해태는 플레이오프서 삼성에 3전 전패를 당한다. 해태는 1986년과 1987년 한국시리즈서 거푸 삼성에게 이겼다. 삼성의 큰 경기 징크스와 늘 대척점으로 거론되던 해태의 V9. 해태의 포스트시즌 첫 패배는 충격이었다. 가을만 되면 당연히 이기는 줄 알았는데.
그해 겨울 김응룡 감독은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겨울이면 모든 프로야구 팀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다. 따뜻한 곳에 가야 부상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훈련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김응룡 감독은 광주에 훈련 캠프를 차렸다. 선수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 무엇보다 가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곳에서 몸을 만들고 싶었다. 해태 선수들은 운동장 한 구석 드럼통 난로에 몸을 녹이며 긴 겨울을 보냈다.
이듬해 해태는 6할4푼7리의 높은 승률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내친김에 한국시리즈서 빙그레(한화)에 4연승, 정상을 되찾았다. 영하의 날씨는 몸을 웅크리게 했지만 정신력은 더 단단해졌다. 추위로 꽉 다문 입은 시즌 내내 의지를 자극하는 회초리로 작용했다.
해태는 2001년 KIA로 옷을 갈아입었다. 좁은 골목길 가게를 전전하던 과자 차는 고급 세단으로 변했다. KIA는 2009년 1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줄곧 내리막길이다. 2013년과 2014년 연속해서 8위에 머물렀다.
올 시즌도 KIA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다.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은 약체로 분류한다. 양현종의 잔류와 윤석민의 복귀로 높아진 마운드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프로야구 해설을 맡은 6명의 전문가 중 5명이 KIA를 약체로 평가했다. 송진우 혼자만 예외다. 송진우는 그들 전문가들 중 유일하게 1990년대 초 무서운 해태를 경험했다. 그나마 송진우조차 KIA의 성적을 상위권이 아닌 중간 정도로 예상했다. KIA는 올 겨울 윤석민을 위해 90억원을 썼다. 역대 FA(자유계약선수) 최대 몸값이다. 4년간 그를 붙들어 놓기 위해 계약금만 40억원을 안겨줬다. 몇 년 전 김주찬을 위해선 50억원을 쐈다.
해태 시절엔 드럼통 난로로도 잘만 겨울을 넘겼다.
그리고 우승했다. KIA는 올 초 48일간을 오키나와서 훈련했다. 올해 또 플레이오프서 탈락하면 아예 강원도로 전지 훈련지를 옮기면 어떨까. 태평양 시절 김성근 감독처럼 선수들을 오대산 얼음물에 풍덩 빠트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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