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현대경제연구원은 광복 이후 70여년간 성장한 경제지표만큼 삶의 질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조사·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경제적 안정, 사회적 유대, 보건·복지, 생활기반 등 네 가지 분야에 걸쳐 조사했는데 이 기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000배, 1인당 GDP는 400배로 급증하는 등 경제적 수준과 삶의 질 수준은 크게 향상됐지만 이혼율, 자살률 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서술했다.
결과적으로 가족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노력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연구내용을 차치하더라도 최근 우리 사회는 존속살해, 가정폭력, 학교폭력, 왕따 등 가족해체, 가족공동체 붕괴와 올바른 인성교육 부재로 사회안전망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거 우리는 산업화시대 이전만 해도 3, 4대가 한집에 살았고 손자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애지중지 보살핌을 받으며 양육됐다. 아이들은 하나의 작은 도서관보다 더 꽉 찬 조부모들의 지혜와 경험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며 반듯하게 자랐다. 하지만 급속한 핵가족화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자 손녀들을 할매·할배들의 품에서 앗아갔다. 세대는 단절되고 밥상머리에서부터 이뤄졌던 인성교육도 빛을 잃었다. 사회적으로 갖가지 병리현상이 나타나고 나라는 갈등과 혼란을 빚고 있다.
물론 지금의 갈등과 혼란이 어느 한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압축성장으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부작용은 물론 일제가 저지른 민족정체성 말살의 후유증도 원인 중 하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정신적 뿌리인 인성교육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 없이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인성교육이 시급한 이유다. 습관이란 손님처럼 슬그머니 왔다가 주인처럼 자리잡기 때문에 어릴 때 습관은 어른이 돼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인성교육의 출발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이뤄져야 한다.
경북도가 매월 마지막 토요일을 '할매할배의 날'로 지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부모와 손자녀가 함께 조부모와 소통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조부모 세대의 삶의 지혜를 가르침 받고 세대 간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격대문화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가족공동체가 회복될 것이다. 이는 자라나는 자녀 세대가 바른 인성을 함양, 앞으로 미래사회에 필요한 올바른 사회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할매할배의 날'은 단순한 노인정책의 하나가 아니다. 조손 간 격대문화 회복을 통해 잃어버린 정신적 뿌리를 되찾고 가족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함이다.
이는 혼과 정체성을 정립하는 일과도 직결된다. 어른을 제대로 모실 때 사회가 건강해지고 그렇게 되면 나라의 기강도 자연스럽게 바로 서기 마련이다. 한 달에 단 하루지만 사랑과 감사, 가족의 정을 돈독히 하는 특별한 날이 되기를 바란다.
박의식 경북도 복지건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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